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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무료 암수술에 석달치 월세 건넨 공공병원 의사

송고시간2022-06-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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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적십자병원 외과 신동규 과장과 십이지장암환자의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환자와 의사와의 거리를 수치로 표현한다면 얼마나 될까.

밀려드는 환자에 지친 의사들은 5분도 안 되는 진료 시간에 환자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일부 환자는 그런 의사와 갈등을 빚으며 폭언에 주먹까지 휘두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요즘이다. 아마도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물리적 거리가 1m라면 마음의 거리는 그 10배, 100배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환자와의 거리 운운하는 게 실례가 될 만큼 요즘 보기 드문 의사가 있다.

주인공은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신동규(53) 과장.

다음은 그가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직접 올린 글과 인터뷰를 거쳐 재구성한 암환자 A(59)씨와의 사연이다.

A씨는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언어 장애가 있는 아버지가 얼마 안 되는 세간살이를 정리해 9살 된 아들 A씨를 데리고 서울로 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다 잃고 한강 둔치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A씨가 열두 살 때 돌아가셨고, 그렇게 A씨는 험한 세상에 홀로 내던져졌다. 그 후 본인 표현에 따르면 '지옥 같은 삶'이 이어졌다. 남의 밥을 얻어먹으면서 컸고, 어른이 되어서는 막노동과 노숙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러다가 병마가 찾아왔다. 올해 3월 초부터 속이 너무 쓰리고 소화가 안 돼 가까운 병원을 찾아갔더니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가진 게 없던 그는 공공병원 중 하나인 적십자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위내시경 검사 결과, 십이지장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신 과장에게 수술이 의뢰됐다.

A씨의 십이지장 암
A씨의 십이지장 암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신동규(53) 과장이 A씨를 진료하면서 장기 상태를 직접 그린 그림. [신동규 과장 제공]

신 과장은 "환자를 처음 봤을 때 그의 모습은 마치 자포자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면서 "배 사진에서 위장이 복강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신 과장에 따르면 보통 위의 용량은 공복 시에 대략 70~80㏄ 정도인데, 음식물이 들어가 부풀면 1 L까지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위유문부(위의 끝 부분)가 막히면 4 L까지도 팽창해 복강 전반을 위가 차지하게 된다.

신 과장이 A씨의 배에 꽉 찬 위액을 코로 빼내기 위해 튜브(L-tube)를 꽂아뒀는데, 위액이 하루에 1천㏄나 나왔을 정도였다니 당시 A씨의 상태를 짐작할 만하다. 이미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길이 다 막혔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6월 13일, 신 과장은 외과에서 가장 큰 수술로 평가받는 '췌장십이지장절제술'에 들어갔다.

보통 대학병원에서는 이런 고난도 외과수술에 교수와 펠로우, 전공의, 외과 보조간호사(PA)까지 4명이 투입되는 게 일반적이다. 또한 수술을 마친 이후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겨지면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이 환자를 별도로 돌보게 된다.

하지만 적십자병원은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특성상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신 과장과 간호사, 단 둘이서 수술을 해야만 했다.

신 과장은 우선 상복부를 열어 위와 십이지장 주위를 떼어내 분리하고, 부풀어 있는 위의 3분의 2를 절제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작은 혈관들을 일일이 다 꿰매면서 위와 소장, 췌장과 소장, 담도와 소장을 각각 연결하는 문합수술을 시행했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수술은 6시간 반이 지난 오후 3시 반에 끝났다.

신 과장은 "이렇게 큰 수술을 하고 나오면 환자의 소변도 줄지만, 의사도 소변도 잘 안 나온다"면서 "둘 다 탈수가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수술 후 무사히 회복돼 소량의 죽과 영양캔을 번갈아 먹기 시작했다. 2개월 만에 음식을 삼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동규 과장과 환자 A씨
신동규 과장과 환자 A씨

[신동규 과장 제공]

그러나 문제가 또 생겼다. A씨가 머무르던 고시원의 주인이 방을 빼달라고 하면서 퇴원해도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이 사연을 들은 신 과장은 소셜 미디어에 A씨의 사연을 올렸고, 이후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잇따랐다. 결국 신 과장은 6월 27일 퇴원하는 A씨에게 자신이 내놓은 30만원을 포함해 3개월치 월세 90만원을 건넬 수 있었다.

신 과장은 "갈 곳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공공병원 의사로서 해야 할 역할이 다시 선명해지면서 지갑을 여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을 거쳐 8년 전 적십자병원으로 옮긴 그는 앞으로도 공공병원에 남아 A씨처럼 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을 돕겠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한 대학병원에서 지금 급여의 2.5배를 주겠다며 이직을 제안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나마 공공병원에 남아있는 저 같은 외과 의사마저 떠나면 의지할 곳 없고, 생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은 누구한테 큰 수술을 받겠습니까. A씨가 일평생 고아로서, 노숙자로서 살아오며 참된 사랑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사랑을 느끼고 다시금 남은 생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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