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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 "화내고 싸우는 여자들 이야기 쓰고 싶었죠"

송고시간2022-07-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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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최종후보 지명 후 첫 신작…소설집 '여자들의 왕' 출간

'현대문학' 장르문학 특집 기획…"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

부커상 최종 후보 포함된 정보라 작가
부커상 최종 후보 포함된 정보라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 취하고 있다. 정보라의 '저주 토끼'(Cursed Bunny)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6편에 포함됐다. 2022.5.13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화내고 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지난 4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라 화제가 된 정보라(46) 작가의 펜 끝은 종잡을 수 없다. 판타지, 공포, 과학소설(SF), 페미니즘까지 다채로운 장르를 누비는 작가여서 다음은 어느 지점에서 엉뚱한 상상력을 펼칠지 호기심이 생긴다.

그가 이달 출간한 소설집 '여자들의 왕'(아작)은 여성 서사에 초점을 맞췄다. 부커상 최종후보 지명 후 처음 펴낸 신작으로 2008년부터 2019년에 걸쳐 쓴 단편 7편을 엮었다. 모두 틀에 박힌 듯한 남성 중심 서사의 주인공을 여자로 바꾼 이야기들이다.

정보라 작가 "화내고 싸우는 여자들 이야기 쓰고 싶었죠" - 2

정 작가는 최근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여성주의 판타지 작품을 쓰겠다는 의지로 집필한 건 아니라고 했다.

명확한 방향은 주인공을 여성으로 둔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인 저의 세계를 중심으로 소설을 쓰는데, 화가 나고 싸우고 싶었던 적이 무척 많았다"며 "여자도 사람이니 살다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는데 '어디 여자가'란 말을 듣게 된다. 억눌린 감정이 어딘가로는 터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이야기 속 여성은 남성에게 무작정 보호받는 취약한 존재가 아니다. 칼을 쓰는데 능하고, 왕좌를 위해 권력 투쟁을 하고, 초월적 존재로 등장해 폭력적인 남성을 응징한다.

수록작인 일명 '공주, 기사, 용' 3부작에서 용이 지키는 탑에 있는 공주는 용맹한 기사가 나타나 구출해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서양 판타지의 패러다임을 주체적인 공주 서사로 뒤집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수다스럽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재미있다.

그는 연작이 된 데 대해 "보통 남성 빌런(악당)에겐 그 배경이 주어지는데 여자는 그냥 마녀, 요녀로 끝나지 않나"라며 "3부작 속 왕비가 마녀인데 저도 그렇게 쓰면 안 될 것 같아 인물들의 사연을 담다 보니 세 편이 됐다"고 했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새롭게 발견한 가족사와 동슬라브 중세 역사에서 가장 진취적인 여성이던 올가 공주 이야기를 병치해 썼다. 성경에 나오는 남성인 사울, 요나단, 다윗을 여성으로 비튼 '여자들의 왕'에선 권력을 잡으려는 여자들의 유혹과 배신이 농염하게 펼쳐진다.

그는 "구약성서 외전(外典)의 '유디트서(書)'에는 적장의 목을 벤 여성 유디트의 얘기가 있고, 동슬라브 역사서 원초연대기에는 유일한 여성 군사령관인 올가 공주가 등장한다"며 "결국 역사상 싸우는 여성은 늘 있었지만, 가부장제 교리에 맞지 않아 기록되지 않았거나, 기록이 지워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커상 최종후보' 정보라 작품 국내외서 잇단 출간
'부커상 최종후보' 정보라 작품 국내외서 잇단 출간

(서울=연합뉴스)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포함돼 세계 문학계 주목을 받은 정보라 작가의 작품이 국내외에서 잇달아 출간된다고 정 작가의 판권 계약 에이전시인 그린북에이전시가 27일 전했다. 사진은 정보라 작가. 2022.5.27 [부커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정보라는 올해 상반기 문학계에서 단연 화제를 뿌린 작가다. 그의 부커상 후보 지명은 문단의 희소식이었다. 후보작이던 환상·공포 장르 소설집 '저주토끼'에 대한 호평은 해외에서 우리 작품의 외연 확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그는 '저주토끼'를 계기로 국내에서 장르 문학이 재조명됐다는 말에 난색을 보였다.

"너무 감사하지만, 장르 문학을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어서…."

그는 "순문학과 장르 문학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긴 하지만, 그럴수록 순문학을 지키려는 자존심도 강하다"며 여전히 훌륭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할 지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4월 말, 바쁜 일정에도 순수 문예지 '현대문학'의 장르문학 특집을 성사시켰다. 현대문학이 7·8월호에 연달아 장르문학 작가 총 20명의 작품을 싣는 이례적인 기획이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인 정 작가는 스페셜 에디터로 참여해 이종산, 전혜진, 황모과 등 작가 19명을 섭외하고 자신도 단편 '통역'을 썼다.

정 작가는 "권위 있는 순문학 잡지에서 두 달에 걸쳐 스무 편을 싣겠다고 하니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작가들이 7월호를 위해 한 달 만에 50매 분량의 단편을 써야 해 빠듯했지만 성사시키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웃었다.

장르문학 특집이 수록된 '현대문학' 7월호 표지
장르문학 특집이 수록된 '현대문학' 7월호 표지

[현대문학 제공]

성실하게 필력을 펼치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 등 사회 참여 활동에도 적극적인 그는 '엘레나는 안다'(Elena Knows)로 부커상 후보에 함께 올랐던 아르헨티나 작가 클라우디아 피네이로에게 특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엘레나는 안다'가 충격적이고 재미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훌렁 읽었다"며 "피네이로 작가님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노동 운동 이력도 오래되신 분인데, 아르헨티나 상황에선 그런 활동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들어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번 영국행에서 여러 곳을 다니며 본 풍경이 마음에 남아 다른 얘기들을 더 써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물론 거듭 밝혔듯이 "대박 무서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작가의 집념은 변함이 없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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