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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품이어서 화가 난다"…한국서 입양 간 덴마크 작가의 분노

송고시간2022-07-0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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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리 랑그바드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출간…입양인·여성·퀴어의 아픔

'국가 간 입양 민낯' 신랄한 비판…"출산율 낮은 한국 왜 계속 보내나"

인사말하는 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
인사말하는 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한국계 덴마크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7.7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제가 느낀 분노는 깊은 슬픔이에요. 친부모로부터 분리되는 슬픔, 국가 간 입양 과정을 알게 되면서 체계적인 입양에 대한 믿음을 잃은 슬픔이죠."

입양아 출신 한국계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42)는 수기 형태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난다)을 집필하며 입체적인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7년에 걸쳐 쓴 책을 이끈 요소는 분노"라며 "건강한 형태의 분노는 변화의 불씨가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책에서 여자는 끊임없이 분노한다. 자신이 수출품이고, 수입품이어서 화가 난다. 국가와 입양기관이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해서 화가 난다. 출산율이 낮은 한국 정부가 국가 간 입양을 용인해서 화가 난다. '여자는~화가 난다'는 문장이 332쪽에 걸쳐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수출품이어서 화가 난다"…한국서 입양 간 덴마크 작가의 분노 - 2

랑그바드 작가는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됐다. 백인 양부모 밑에서 백인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접하며 자란 그는 아시아계 입양인, 여성, 퀴어로서 중첩된 소수자로 살았다.

그는 "덴마크에서도, 한국에서도 소수자라고 느꼈다"며 "항상 바깥에서 바라보며 조용히 관찰하고 배우는 지점이 있었다"고 했다.

2006년 피를 나눈 가족과 재회한 그는 2007~2010년 서울에 머물며 국가 간 입양에 비판적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경험뿐 아니라 다양한 입양인들의 서사에서 터져 나온 감정을 응축했다. 입양 시스템의 민낯, 국가 간 입양을 주선하는 기관과 이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권력 구조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작가는 "커뮤니티에 머물면서 입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힘의 균형이 어떻게 사업으로 이뤄지는지도 생각하게 됐다"며 "세계 각국에 입양된 한국인과 여러 인종의 입양인을 만나며 입체적인 이해가 쌓였다"고 설명했다.

화자를 '여자'로 설정한 데 대해선 "내 경험이자 다른 입양아의 경험이기도 하다"며 "화자와 거리를 둘 필요도 있었다"고 했다. 책은 시집이지만 산문 형태를 띠어 실험적인 작법이다. 그러나 문장이 주는 리듬감은 어느새 강렬한 시구나 구호처럼 다가온다.

마야 리 랑그바드,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출간
마야 리 랑그바드,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출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한국계 덴마크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7.7 ryousanta@yna.co.kr

한국인이란 정체성 없이 자랐던 그는 어렵게 찾은 친부모와의 만남 이후 심한 후유증을 겪었다. 통역 없이 대화조차 할 수 없는 만남은 고통스러웠고 이후 5년간 교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또한 내 성 정체성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작가는 책에서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인 여성, 퀴어로서의 '화'도 표출했다. '여자는 한국에서 동성애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는 것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낙태보다 입양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그는 "국가 간 입양은 여성의 인권 문제와도 이어진다"며 "제가 입양됐을 때 여자란 이유로 먼저 선택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을 원했는데 딸을 얻은 부모가 입양 보낸 경우도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출산율이 낮은데도 입양을 계속 보내는 것과 관련해 제도 개선에 앞서 우리 사회가 가진 입양에 대한 정서나 가족의 의미 등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1년 스웨덴 출신 입양아의 삶을 다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부터 올해 칸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영화 '브로커'까지 이 문제는 꾸준히 다뤄지고 있다.

작가는 "입양인으로서 늘 일상에서 감사하기를 요구받았다"며 "입양은 양부모나 입양인에게 좋은 일로 인식되지만, 입양인으로서 어려움이 많고 이득만은 아니란 걸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혜순 시인이 제목을 붙여준 이 책은 덴마크 출간 8년 만에 한국 독자들과 만난다.

작가는 "덴마크 독자를 염두고 두고 썼지만 집필 내내 한국에서도 이 책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어로 출간돼 하나의 끝을 맺는 기분이라고 기뻐했다.

또 "영어로도 번역됐으면 좋겠다"며 "이 책의 텍스트가 저와 제가 만난 여러 입양인이 공동으로 해낸 증언이고 공동 선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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