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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중국의 '기피 인물' 낸시 펠로시

송고시간2022-08-0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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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만난 펠로시 美 하원의장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만난 펠로시 美 하원의장

(싱가포르 AFP=연합뉴스) 싱가포르를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이 1일(현지시간) 싱가포르의 이스타나 대통령궁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아시아 순방에 나선 펠로시 하원의장은 오는 4일 한국을 방문, 김진표 국회의장과 양자 회담을 할 예정이다. 2022.8.1 alo95@yna.co.kr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논설실장 = 1991년 9월 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중국을 방문 중인 미국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원은 동료 의원 2명과 함께 인민영웅기념비 앞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사람들을 애도함'이라고 쓰인 검은색 깃발을 펼쳤다. 2년 전 6ㆍ4 톈안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규탄하는 퍼포먼스였다. 펠로시 의원과 벤 존스(민주당), 존 밀러(공화당) 등 3명의 미 하원의원들은 이어 기념비에 헌화하고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짤막한 성명을 낭독했다. 톈안먼 민주화운동 시위과정에서 구금된 정치범들의 석방 압력을 가하고자 이틀 전 인권문제대표단의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은 이들은 이날 동행한 자국 기자들과 함께 숙소 호텔을 몰래 빠져나와 깜짝 행사를 벌여 중국 당국을 혼비백산케 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CNN 기자 등 미 보도진이 중국 경찰에 의해 구타당하거나 일시 구금됐다.

당시 펠로시 의원 등은 중국 외교부 등 관련 부처 고위관리들과 회담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구속된 정치범 등 반체제인사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하지만 톈안먼 시위에 따라 국가전복 혐의로 13년형을 선고받은 뒤 수형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던 2명의 반체제 정치범을 만나는 데는 실패했다. 당시 미 의원들을 초청한 중국 외교부 산하 인민외교학회는 펠로시 의원 등의 돌발 퍼포먼스에 대해 중국 국내법 위반이자 고의적인 반(反)중국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이들이 벌인 추도식은 불법적이며 의도적인 반혁(反革) 사건이며, 중국 내정에 대한 명백한 간섭인 동시에 중국 인민으로부터 극도의 분노를 자아냈다고 주장하면서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중국 당국의 '외교적 기피인물'로 찍힌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2일 밤 대만을 전격 방문한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미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아시아를 순방 중인 펠로시 의장은 이날 밤 대만에 도착해 타이베이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숙박한다. 이어 3일 오전 8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면담하고 입법원(의회)을 방문한 뒤 오전 10시께 대만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미 권력 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에 대해 중국은 미ㆍ중 간 합의인 '하나의 중국'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맹비난하며 무력 시위를 불사하겠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간다면 이는 중ㆍ미 관계를 심각하게 파괴해 매우 심각한 사태와 후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중국 인민해방군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절대 좌시하면서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군 당국은 남중국해 4개 해역과 그 접속수역에서 2일 0시부터 6일 자정까지 군사훈련을 할 것이라며 선박들이 해당 해역에 진입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펠로시 美 하원의장 소식 대서특필한 대만 신문
펠로시 美 하원의장 소식 대서특필한 대만 신문

(타이베이 로이터=연합뉴스) 2일 대만의 한 신문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관련 뉴스를 1면 지면에 대서특필하고 있다. 아시아를 순방 중인 펠로시 의장은 이날 중국의 반발에도 대만 방문을 강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2022.8.2 leekm@yna.co.kr

펠로시 의장의 '중국 인권'에 대한 관심은 집요하다. 1989년 중국 당국이 톈안먼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 하자 미국에 유학 중인 중국 대학생들이 졸업 후 미국에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미 행정부에 제안한 데 이어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최혜국 대우 연장 시 중국의 인권개선을 조건부로 하는 법안을 발의해 1991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펠로시 의장은 매년 최혜국 대우 자격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나 티베트 관련 조항 등을 부가하는 법안을 제출해 중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미 행정부에 요구하는가 하면 중국 당국의 강제 낙태 중단을 촉구하거나 미ㆍ중 정상회담 시 미 대통령에게 중국 인권을 언급하도록 압박하는 일도 벌였다. 펠로시 의장은 미 정가에서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의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1997년 8월 동료의원들과 함께 정보위원 자격으로 이틀간 방북해 북한의 식량 사정을 파악하고 북 고위관리들과 미사일, 미군 유해, 상호연락사무소 개설 문제 등을 놓고 논의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이 독재 속에 굶주림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며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사설에서 펠로시 의장이 자신의 오랜 정치 인생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을 부각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했다면서 이번 대만 방문도 그 일환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만은 오늘날 훨씬 더 복잡한 지정학적 이슈를 대표하는 지역으로서 대만 해협을 가로지르는 전쟁의 위험은 실제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 신문은 이번 펠로시 의장의 방문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추구하는 가을 당 대회(20차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대회)를 앞둔 가운데 중국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고 '제로 코로나' 정책이 비판을 받는 등 내부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설의 제목은 '낸시 펠로시의 분별없는(ill-conceived) 타이완 방문'이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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