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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피어있는길' 작곡 김강섭 별세…'가요무대' 20년 지휘(종합)

송고시간2022-08-0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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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히트곡 다수 작곡…군가 '너와 나'·'팔도 사나이'도 만들어

"다양한 장르 가요에 접목…완성도 뛰어나"…가수 최희준 가요계로 이끌기도

작곡가 故 김강섭
작곡가 故 김강섭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KBS 관현악단장을 맡아 1960∼1970년대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등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고 KBS 장수 가요 프로그램 '가요무대'를 20년 이끈 연주자 겸 작곡가 김강섭이 9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에 따르면 고인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 군악대에서 복무하고 육군교향악단에서 활동하며 위문공연과 미군 클럽 무대에 섰다.

전역 이후에는 김광수 악단과 김호길 악단 등을 거치며 팝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했다.

고인은 1961년 KBS에 경음악단장(이후 KBS 관현악단)으로 입사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1964년 최숙자가 부른 라디오 연속극 '나루터'의 주제가를 작곡했고, 이를 시작으로 1960∼1970년대 작곡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이후 '불나비'(김상국·1965),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김상희·1967), '빨간 선인장'(김상희·1969), '그 얼굴에 햇살을'(이용복·1969), '꿈나무'(유리시스터즈·1971), '흰 구름 가는 길'(나훈아·1971), '파초의 꿈'(문정선·1972) 등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특히 1970년 발표한 '잘 있거라 내장산아'(이상열·배호)는 훗날 2014년 그의 고향인 전북 정읍의 내장산 워터파크 광장에 노래비로 세워지기도 했다.

고인은 1975년 일본에서 열린 동경국제가요제에서는 '즐거운 아리랑'(김상희)으로 입상의 영예도 안았다.

그는 작곡가로 활동하며 가요 외에도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불러봤을 법한 군가도 여럿 만들었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라는 도입부가 잘 알려진 군가 '너와 나'와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로 시작하는 유명 군가 '팔도 사나이'가 그의 작품이다.

김강섭은 KBS 관현악단장으로 1985년 '가요무대'의 출범부터 음악 지휘를 전담했다.

작곡가 故 김강섭
작곡가 故 김강섭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1995년 정년퇴임 이후에도 2005년까지 상임지휘자로서 '가요무대'를 이끌어 무려 20년, 총 900회가 넘도록 이 프로그램의 '산증인'으로 활약했다.

고인은 '가요무대'를 이끌 당시 가수들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는 '호랑이 선생님'으로도 유명했다. 가수들이 노래 연습을 게을리했을 때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호통쳐 담당 PD가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고인은 지난 2004년 연합뉴스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요무대'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PD가 곡을 선정해 해당 가수들에게 미리 연습해오라고 하는데 일부는 연습해오지 않는 것"이라며 "해온다고 해도 노래방에서 연습해오기 일쑤인데, 노래방에 있는 가요 책들은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노래방에서 노래 연습해오고 틀린 부분을 맞는다고 자꾸 우길 때는 내가 미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러나 "한편으로 고인은 '가요무대' 출연 가수의 특징과 버릇을 워낙 잘 꿰고 있어 이에 따라 연주해주기로 유명했다"며 "이에 출연자들은 다른 음악 프로그램보다 '가요무대' 출연이 편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고인은 2018년 작고한 가수 최희준(본명 최성준)의 예명을 지어주고 가수로 데뷔시키기도 했다.

작곡가 故 김강섭(가운데)와 가수 문정선(좌)·김도향(우)
작곡가 故 김강섭(가운데)와 가수 문정선(좌)·김도향(우)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내가 가수 최희준을 스카우트했다"며 "내가 이끌던 밴드가 서울대 법대 신입생 노래자랑에 음악을 반주하러 갔는데, 당시 최희준이 '냇킹 콜'의 노래를 썩 잘하더라"고 가요계 뒷얘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그는 대중음악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93년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작고 전 수년간 신장병으로 투석을 받았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고인을 두고 "미8군 무대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기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했고, 이를 한국 대중가요에 접목했다"며 "시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나서는 등 노래의 완성도가 뛰어난 것이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또 "우리나라 옛 가요 프로그램의 대표 주자인 '가요무대'를 만든 1등 공로자"라고도 짚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와 세 딸이 있다. 유족 측의 사정으로 고인의 빈소는 11일 서울성모장례식장 10호실에 마련된다. 발인은 13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이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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