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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장인열전] 강렬한 문양·색채 이끌린 44년 외길…권현규 단청장

송고시간2022-08-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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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연소 기능 보유자·최고령 문화재 수리기술자 타이틀

"문화·역사 가치 높은 탱화 발굴해 문화재 지정받게 할 것"

(청주=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7일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丹靑匠) 기능보유자인 권현규(71) 씨와 함께 청주 우암산 기슭의 복천암을 찾았다.

'극락보전'(極樂寶殿)이라고 이름 붙은 불전의 처마와 벽체를 채색한 화려한 문양과 벽에 걸린 탱화 등을 찬찬히 둘러보던 그의 얼굴에는 금세 엷은 미소가 돌았다.

극락보전 단청 둘러보는 권현규씨
극락보전 단청 둘러보는 권현규씨

(청주=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충북도 무형문화재 단청장 기능 보유자인 권현규씨가 청주 복천암 극락보전 처마를 바라보고 있다. 2022.8.19 ywy@yna.co.kr (끝)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 강산이 두 번 바뀌었지만, 단청과 탱화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와 신비로움을 뽐냈다.

이 불전에는 그의 혼과 땀이 배어 있다.

그는 1998년 석 달가량 이곳에 머물며 단청을 진두지휘했다.

단청은 목조나 석조 건물, 석벽, 목공예, 조각품 등에 오색(청·적·황·백·흑)을 기본으로 무늬와 그림을 입혀 웅장하게 장식하는 작업이다.

궁궐과 사찰, 향교, 비각, 정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단청은 불교나 유교가 성행한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유행했지만, 지금껏 명맥을 잇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나라 단청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쌍영총 등에 다양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삼국시대 불교가 들어오면서 더욱 활발해졌는데 관청의 경우 화사, 화공, 가칠장, 도채장이 색칠을 맡았고, 사찰은 화승(그림 그리는 스님)이 그 역할을 했다.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 기능 보유자 권현규씨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 기능 보유자 권현규씨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 기능 보유자인 권현규씨가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22.8.19. kw@yna.co.kr (끝)

건축물 등에 오색 옷을 덧입히는 이유는 장엄하고 신성한 공간으로 꾸미기 위함이다. 썩기 쉬운 나무를 비바람이나 벌레로부터 보호하는 의미도 있다.

권씨는 "건축주의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이 때문에 신라시대 일반 살림집은 단청이 금지됐다"고 설명했다.

권씨와 단청, 탱화의 인연은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사찰을 자주 찾던 그는 일찌감치 불교 미술에 눈을 떠 단청의 길로 들어섰다.

11살 때 어머니를 여읜 그는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고 먹고살기 위해 여러 곳을 떠돌며 온갖 잡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불교미술의 매력을 잊지 않고 지내다가 20대 때 당시 박동수·이인호 선생한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른 무렵에는 화승이던 영봉 스님을 찾아가 사사받기도 했다.

인터뷰하는 단청장 기능 보유자 권현규씨
인터뷰하는 단청장 기능 보유자 권현규씨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인터뷰하는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 기능 보유자 권현규씨. 2022.8.19. kw@yna.co.kr (끝)

타고난 소질과 끊임없는 노력, 스승의 조언 등이 더해져 그의 그림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1978년 여름 그는 마침내 충남 부여의 '수북정' 단청 작업에 잡역부로 참여했고, 이게 계기가 돼 2년여 뒤 충남 논산의 개태사 일주문과 화장암 대웅전 단청을 직접 그렸다.

그의 남다른 눈썰미와 화려한 솜씨는 금세 입소문이 나 각지에서 단청 의뢰가 이어졌다.

이후 청주 용화사와 복천암, 보살사, 월리사, 속리산 복천암을 비롯해 비각, 정자 등 100여 곳에 색을 입혔다.

자신의 손길이 스친 건축물을 나열하던 그에게 단청 종류와 과정 등을 묻자 "다 설명하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먼저 문양과 색을 구상한 뒤 칠할 표면부터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림이 잘 붙도록 아교(접착제)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고 짧게 설명했다.

탱화 설명하는 권현규씨
탱화 설명하는 권현규씨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작업실에서 단청장 기능 보유자인 권현규씨가 탱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2.8.19. kw@yna.co.kr (끝)

그는 2001년 '하늘의 명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전국 최연소 단청장 기능보유자 자리에 올랐다.

이 분야 국내 최고 기술을 자랑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5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10년 가까이 병마와 싸웠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렇지만 성치 않은 몸도 그의 예술혼과 열정만큼은 막지 못했다.

병마와 싸우면서 신륵사 벽화와 단청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2편의 논문도 발표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연필과 붓을 놓지 않으면서 주경야독한 결과다.

2014년 서울 한국불교역사 문화기념관에서 불화전을 열고, 2019년에는 전국 최고령으로 단청 분야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도 땄다.

탱화 살펴보는 단청장 기능보유자 권현규씨
탱화 살펴보는 단청장 기능보유자 권현규씨

(청주=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 기능 보유자 권현규씨가 청주 복천암 극락보전에 걸린 탱화를 살펴보고 있다. 2022.8.19 ywy@yna.co.kr (끝)

평생 단청과 탱화에 파묻혀 살아온 그에게도 잊히지 않는 뼈아픈 과거가 있다.

1978년 수북정 단청 때 의재 허백련(1891∼1977년) 선생이 그린 화조(花鳥)를 몽땅 지워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근대 한국화계 거목의 작품이 그의 실수로 사라진 것이다.

그는 당시 지워진 그림이 허 선생 작품이었다는 것을 단청 후 10여 년이 지나서야 전해 듣고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권씨는 "그림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후대에 물려줄 작품을 내 손으로 없앴다"며 "이때 받은 충격으로 이후로는 새를 그리는 것을 꺼린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전국의 사찰에 소장된 탱화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에 남은 열정을 쏟아부을 각오다.

그림 그리는 단청장 기능보유자 권현규씨
그림 그리는 단청장 기능보유자 권현규씨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단청장 기능 보유자 권현규씨가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작업실에서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22.8.19 kw@yna.co.kr (끝)

탱화 중 역사적·문화재적 가치 있는 작품을 찾아내 문화재로 지정받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다.

그는 2024년 말 청주시가 추진하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이 완공되면 그곳에 입주해 단청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y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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