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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도 1∼3시간 줄 서 조문

송고시간2022-09-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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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다스리던 시절 홍콩은 최소한 번영했다"

[촬영 윤고은]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놓인 꽃과 사진들.

[촬영 윤고은]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놓인 꽃과 사진들.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저는 영국 식민지 시절과 여왕에 대해 많은 좋은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딸, 남편과 함께 헌화하려고 왔어요. 딸에게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오늘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13일 홍콩 애드머럴티에 위치한 주홍콩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만난 카르맨 씨는 이렇게 말하며 꽃밭으로 변한 현장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온 그는 길게 늘어선 조문객 줄에 합류하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영사관 앞 기둥에 꽃을 꽂았다.

카르맨 씨는 "나는 영국에서 태어난 뒤 홍콩으로 왔는데 식민지 시절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모든 게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도 홍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왕이 다스리던 시절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어 오늘 이렇게 추모하러 왔다"고 덧붙였다.

10대로 보이는 그의 딸도 현장의 추모 열기를 스마트폰에 연신 담아냈다.

[촬영 윤고은]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모여든 추모객과 그들이 놓고 간 꽃들.

[촬영 윤고은]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모여든 추모객과 그들이 놓고 간 꽃들.

낮 12시30분 이미 수은주는 34를 가리켰고 오후 2시가 되자 36도까지 치솟은 이날 홍콩은 잠시만 야외에 서 있어도 등에서 김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영국 총영사관 안에 놓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위한 조문록에 서명하려는 홍콩인들은 500m는 족히 돼 보이는 긴 줄을 만들며 묵묵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주홍콩 영국 총영사관은 오후 2시 트위터를 통해 "조문록에 서명하기 위한 대기 시간이 현재 3시간에 달한다"며 "헌화를 하려는 분들은 영사관 앞으로 곧바로 오면 된다"고 안내했다.

영국 총영사관은 전날부터 닷새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조문객을 받는다.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는데도 조문객은 계속 모여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팡이에 의지한 백발의 노인들이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온 노인들은 걸음을 떼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지만 조문 행렬 속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또 대기 줄에 선 이들은 절반 이상이 중년층 이상으로 보였지만 20대로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서양인은 극소수였다.

[촬영 윤고은]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기둥을 장식한 추모객들의 헌화.

[촬영 윤고은]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기둥을 장식한 추모객들의 헌화.

오전 11시에 와서 1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영사관 안으로 입장할 수 있는 줄의 맨 앞으로 온 30대의 웡모 씨는 "드디어 조문을 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며 "여왕을 위해 꼭 꽃을 바치고 싶었고 기다리는 게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꼭 조문을 하라고 해서 왔지만 나 역시도 기꺼이 조문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사관 앞 좁은 인도와 건물의 기둥은 꽃과 여왕의 사진으로 가득 찼다. 조문객 줄에 서지 않은 사람들은 헌화하며 합장을 하거나 기도를 했다.

영사관 직원들이 구간별로 끊어서 통제하는 긴 대기줄에 선 대부분의 사람도 꽃을 준비해왔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을 이용해 온 직장인 30대의 렁모 씨는 "여왕의 마지막 길에 헌화하는 것이 우리가 그녀에게 표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인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식민지 시절이 최선은 아니었지만 홍콩은 그 시절 최소한 번영했다. 여왕은 홍콩이 그 시절 번영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줬다"며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여왕의 생일이 휴일이었던 점이 좋았고 홍콩 어디를 가든 여왕의 존재감이 느껴졌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웃었다.

홍콩인들이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냐고 묻자 그는 "세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윗세대는 여왕이 홍콩에 가져다준 것들을 기억할 것이지만 식민지 시절에 대한 경험이 없는 젊은 층은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경우 정도나 영국에 대해 유대감을 갖지 않을까 싶다"며 "오늘 여기 조문 줄을 선 젊은 친구들은 아마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콩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추모 행렬
홍콩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추모 행렬

[촬영 윤고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모여든 추모객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

다른 조문객들도 여왕과 영국 식민지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비슷한 말을 했다. 다만 상당수가 이름을 묻자 밝히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 조심스러워하는 홍콩인들의 모습을 이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조문객의 줄을 통제하던 한 영사관 직원은 "어제가 휴일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조문객의 규모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밤 브라이언 데이비슨 주홍콩 영국 총영사는 트위터를 통해 "2천500여명이 조문록에 서명을 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15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됐다.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은 홍콩에서는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내용의 교과서가 편찬됐다.

[촬영 윤고은]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놓인 꽃들과 여왕의 명복을 비는 촛불.

[촬영 윤고은]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놓인 꽃들과 여왕의 명복을 비는 촛불.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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