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英 여왕의 서거와 런던브리지
송고시간2022-09-15 15:16

(메이든헤드 AP=연합뉴스)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지난 7월 15일 메이헤드의 템스 호스피스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자료사진] 2022.09.08 ddy04002@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성한 논설주간 = 구전 영어동요 '런던브리지가 무너지네(London Bridge is falling down)'가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서거로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진 모르지만 이 동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본고장인 영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들 사이에 친근하게 불린다. 런던브리지는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처음 지어졌다. 오래 돼 무너져 다시 짓고 또 불에 타 다시 짓고 하다보니 동요까지 생겨난 듯 하다. 런던에서는 탑처럼 생긴 건물에 다리가 연결된 화려한 '타워브리지'가 사진찍기 명소로 꼽힌다. 그래서 타워브리지를 런던브리지로 착각하는 관광객들도 많다. 평범해 보이지만 런던브리지는 역사가 깊다. 로마가 영국을 점령했을 때인 서기 53년께 목조다리로 지어졌다고 한다. 거의 2천년전이다. 다리 위에 집이나 가게 등이 함께 있는 모습으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1750년 웨스트민스터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템스강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지금의 콘크리트 다리는 1973년 새로 건립됐다.
왜 여왕의 서거에 대비한 종합대응 계획의 코드명이 '런던브리지 작전(Operation London Bridge)'일까. 거리상으로 런던브리지는 버킹엄궁에서 꽤 떨어져 있다. 버킹엄궁에서는 시계탑 빅벤 옆에 있는 웨스트민스터브리지가 가깝다. 이 작전에는 운구부터, 왕위계승, 장례 등 세세한 절차가 망라돼 있다. 지난 2017년 3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에 따라 지난 8일 여왕의 서거 사실은 즉각 총리에게 '런던브리지가 무너졌다(London Bridge is down)'는 표현으로 전달됐다. 동시에 여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15개 국가와 영연방(Commonwealth) 38개국가에도 동시에 통보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숨지면서 이 작전의 세부 계획 중 하나인 '유니콘 작전(Operation Unicorn)'이 실행됐다. 밸모럴성은 여왕이 일 년 중 여름철 3개월을 보내는 곳이다. 딸인 앤 공주가 동행해 모친의 시신을 에든버러 홀리루드궁전으로 옮겼고, 왕실 가족들이 모여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치렀다. 이어 여왕의 시신은 영국 공군기로 런던으로 운구됐다. 작전명 '유니콘'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영국 왕실의 문장에는 왼편에 잉글랜드를 의미하는 왕관을 쓴 사자가, 오른편에 스코틀랜드를 뜻하는 유니콘이 그려져 있다. 여왕이 해외 순방 중 서거할 것에 대비해 영국공군 32 편대의 전용기로 운구하는 '오버스터디 작전(Operation overstudy)'도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런던브리지가 무너지네, 무너지네, 무너지네(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 다리가 무너지는데도 음이 너무 경쾌하고 신나 좀 당황스럽다. 구전동요라 여러 가지 버전이 전해지지만, 후렴구 맨 마지막은 늘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로 끝난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역사 속 잦은 다리 붕괴로 숨진 여성을 추모하는 의미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여왕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래서 여왕 서거 이후 작전의 코드명이 '런던브리지'로 정해진 것일까. 1952년부터 역대 가장 긴 70년간 왕위를 지켰지만 결국 스러져간 입헌군주의 모습이 2천 년 가까이 갖은 풍파를 헤쳐온 '런던브리지' 역사와 비슷하게 겹쳐졌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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