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2003년 김두관, 2022년 박진…공수 바뀐 해임건의안
송고시간2022-09-28 16:20
제헌국회 후 6건 해임건의안 가결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박근혜 유일
거대 야당의 박진 해임건의안 제출, 2003년 김두관 파동 때와 흡사
19년 전 한나라당, 대선불복 심리 속 盧 탄핵으로 폭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논설위원 = 1948년 제헌 의회가 구성된 후 지금까지 국회에서 통과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6건이다.
1955년 임철호 농림부 장관을 시작으로 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2003년 김두관 행자부 장관, 2016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까지 6명의 이름이 헌정사에 새겨져 있다.
민주화 항쟁의 산물인 87년 개헌 후 국회의 해임건의권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말 그대로 '건의'로 힘이 빠졌지만,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은 2016년 박근혜뿐이다. 박정희도 헌법에 명시된 '특별한 예외'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임기 중 있었던 권오병, 오치성에 대한 국회의 해임 건의를 연달아 수용했다. 해임건의가 갖는 정치적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방증이다. 국회가 국민의 뜻, 즉 민의를 대변한다는 헌법 정신이 그 바탕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간의 해임건의안 제출과 국무위원 해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장관의 자질보다 권력 암투와 정략적 이해관계가 내재해 있던 게 사실이다.
'실미도 사건'이 해임안 제출의 빌미가 된 오치성 파동이 대표적이다. 박정희는 1971년 6월 개각을 단행하면서 오치성을 내무부 장관에 앉히고 경찰개혁을 맡겼다. 쌍용그룹 설립자로, 당시 경찰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김성곤 등 공화당 4인방(김성곤·김진만·백남억·길재호)의 힘을 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위협을 느낀 공화당 실세들은 오치성을 타깃 삼아 야당인 신민당과 합세해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이 유명한 10·2 항명파동이다. 김성곤은 그 길로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카이저 콧수염이 뜯기는 수모를 당하고 정계에서 축출됐다.
10·2 항명 파동이 여권 내부 알력에서 비롯됐다면 2003년 김두관 해임 파동은 한나라당의 대선 불복 심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은 한총련 대학생들의 미군 사격장 난입 시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는 명분을 댔다. 하지만 가뜩이나 소수 여당인 민주당이 친노무현계 신당파와 김대중계 구주류 간 극한 대립으로 분열한 틈을 타 대통령 노무현의 힘을 빼거나 끌어내리려는 심사도 깔려 있었다.
국회 표결 직전 당시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은 "대통령이 국회 의견(해임건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헌법을 유린하는 것"이라며 탄핵의 불가피성을 제기했다. 의원총회에서 김무성은 "치가 떨린다. 내 마음속에서 노무현을 이 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 퇴임 운동을 벌여야 된다"고까지 했다.
김두관은 해임건의안 통과 14일 만에 사표를 냈고, 버티던 노무현은 이틀 만에 사직서를 수리했다. 거대 야당의 힘을 앞세워 뜻을 관철했지만, 한나라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탄핵을 향해 폭주했다. 친노계가 47석의 미니 여당(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여권이 두 동강 나자 한나라당은 민주당 잔류파를 설득해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박진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열리기 전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2.9.28 [국회사진기자단] srbaek@yna.co.kr
윤석열 정권 출범 넉 달 만에 야당인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외교참사'의 책임을 묻는 차원이라지만 윤 대통령을 겨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해임안 정국은 김두관 파동 때와 여러모로 닮았다.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시점부터 대선 패배 후 처음이자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앞둔 9월이다. 여권이 친윤석열계 신주류와 이준석 전 대표 간 갈등으로 어수선한 데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2003년 노무현 때처럼 급전직하해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회 내 야권 세력이 절대 과반이고 대놓고 대통령 탄핵을 입에 올리고 있다. 여권에선 내홍 속에서 신당창당설이 고개를 들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야당이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정녕 돌고 도는가. 민주당과 윤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당분간 정치 실종은 불가피해 보인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2/09/28 16:2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