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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문학상] 영원한 삶을 욕망하는 사람들

송고시간2022-09-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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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자본의 음모 정교하게 파헤친 '속도의 안내자'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지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엘리자베스 H. 블랙번 등 3명의 과학자가 호명됐다.

연구팀은 인간 세포가 노화되는 원인이 염색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와 관계있다는 세포 노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 연구는 난치병과 노화 등 인류 최대 과제를 풀 유전학적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루려는 세계 과학자들과 기업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글로벌 기업 구글이 2013년 설립한 생명공학 계열사 칼리코는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을 찾기 위해 벌거숭이두더쥐지를 연구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지난해 역노화 연구 스타트업인 알토스랩스에 투자했다.

제10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이정연의 '속도의 안내자'는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에서 착안해 인간의 오랜 염원인 영원한 삶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삶에 깔린 근원적인 테마여서 자칫 식상하게 흘러갈지 모를 서사는 독특한 설정, 실마리를 풀어가는 정교한 구성으로 몰입감을 높인다.

경마장 도핑 검사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 채윤은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고모와 함께 산다.

어느 날 가까운 경마장 직원으로부터 비밀리에 물건을 배달하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제안받고 일을 시작한다.

전화로 지시받는 배달 업무는 간단하다. "어느 곳에서 전달자를 만나 주소가 적힌 곳으로 물품을 배달하라."

그런데 물건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크게 기뻐하거나 약을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수취인이 있는가 하면, 싸우고 숨고 화를 내며 강하게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배달품을 거부하던 한 노인은 그 물건이 염색체를 조작하는 약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과거 한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직접 임상시험자가 됐다가 약의 부작용으로 노인이 됐다는 고백도 한다.

어느새 그와 손잡은 주인공은 불법 임상시험으로 노화 방지약을 개발하는 대기업의 원대한 음모에 다가간다. 이 프로젝트에 연루된 고모의 숨겨진 과거와 가족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과도 마주한다.

소설은 인류를 위한 선택이란 명분으로 약자를 짓밟는 거대 자본, 생명이 담보되지 못한 실험에 뛰어드는 인간의 욕망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사회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다.

도입부터 등장하는 경마장과 경주마 도핑 검사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도 흥미롭다.

추리 소설의 외피에 우리 삶 언저리에 도사린 일그러진 탐욕을 파헤치는 전개는 한편의 장르 영화 같다.

자신도 모르게 '속도의 안내자'가 된 주인공이 혼란, 증오, 절박함 등 심리적 변화를 겪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에 도달한다. 모든 젊음은 아름다울까, 영원한 삶을 사는 건 행복한 일일까, 가치 있게 사는 삶은 무엇일까.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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