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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88세 국민의사 이시형 "40년간 감기 몸살 한번 없었다"

송고시간2022-10-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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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운동, 스트레스 관리가 건강에 가장 중요"

책 110권 발간…올해도 신간 낸 '현역 중의 현역'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이시형 박사는 만 88세다. 그런데도 젊은이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한다. 발음이 분명하고 외모도 60대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을 현역 중의 현역이라고 한다.

이 박사는 1934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신경정신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경북대 의대 교수,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 등을 지냈다. 2007년 강원도 홍천군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설립했고 2009년에는 세로토닌 문화원을 세웠다.

그를 최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나.

▲ 나는 적게 먹는다. 밥을 먹어도 한 숟가락에 불과할 정도다. 아침에는 그것도 안 먹고 나물을 먹는다. 그리고 아침에는 사과를 섞은 당근 주스를 꼭 마신다. 당근이 땅에서 나는 모든 영양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덩치에 그 정도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하는데, 습관이 돼서 배고프지 않다. 체력도 문제없고 속(위장)이 편하다. 가볍게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역도선수처럼 그런 강한 운동이 아니라 걷기 등의 가벼운 운동을 말한다.

나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를 잘한다. 스트레스가 오면 '그 정도는 있을 수 있지' 하고 받아들인다. 또 중요한 것은 보람찬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이 나의 건강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 강연하고, 인터뷰하고, TV 출연하는 등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마음의 양식이다. 세로토닌 문화원도 그렇고. 선마을도 그렇고 건강에 제일 중요한 것이 보람찬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40년간 감기와 몸살을 앓은 적이 없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이시형 박사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이시형 박사

[촬영 정한솔]

-- 선생님은 채식을 권하는 편인가요.

▲ 나는 꼭 채식만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채식을 할 때는 날것으로 먹지는 않는다. 삶아 먹어야 한다. 식물에는 소중한 자기방어 물질인 파이토케미컬이 있는데, 이것이 셀룰로이드라는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막은 씹는 것으로 터뜨려지지 않는다. 생채식으로는 파이토케미컬을 흡수하지 못한다.

-- 기상 시간은 어떻게 되나.

▲ 오전 5시에 일어난다. 커피를 끓이고 세수를 하고 방에서 30분 정도 맨손체조도 하고, 제자리 걷기와 뛰기도 한다. 명상도 한다. 그렇게 하면 정신이 맑고 깨끗해진다. 오후 10시 30분에는 잠자리에 든다. 잠이 부족하면 낮에 15∼20분가량 낮잠을 잔다.

-- 책을 많이 내는데, 이번에도 신간을 내지 않았나.

▲ 우리나라에서 80대, 90대가 200만 명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 번도 그렇게 오래 사는 사람들을(대규모로) 본 적이 없다. 신인류다. 이런 문제를 다룬 책 '신인류가 몰려온다'를 냈다.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0%를 넘어가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4년 후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가 된다. 정부에서는 아직도 초고령사회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일본은 대책이 잘 돼 있는데, 우리는 안 돼 있다.

75세부터는 노화가 시작된다. 본인이 느낀다. 85세가 되면 본격적 노화에 들어간다. 다리가 불편하든가 해서 누가 봐도 노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고독도 문제다. 어떤 병보다 무서운 게 고독이라는 병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친한 친구 15명 가운데 두 명만 살아있고 모두 세상을 떴다. 이렇게 친구들이 죽게 되면 갈 데가 없다.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장수의 늪'을 건너야 한다.

젊은 시절의 이시형 박사
젊은 시절의 이시형 박사

[본인 제공]

-- 병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 예방에 대한 개념이 제일 약한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는 밥을 빨리 먹고, 많이 먹는다. 폭음 폭식하고 술 취해 집도 못 가곤 한다. 그래서 병이 생긴다. 생활을 잘못해서 생긴 것은 본인이 고쳐야 한다. 생활습관병은 의사가 못 고친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게 되면 병원에 안 가도 되는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이나 늙었을 때나 큰 병에 걸려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

-- 성장기 가정 형편은 어떠했나.

▲ 어릴 때 우리 집은 굉장히 부자였다. 대구 동촌 비행장 쪽이 다 우리 땅이었다. 성균관이었던 명륜전문학교에서 공부하신 아버지는 군청에서 문화재 관리를 하셨다. 삼촌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삼촌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그 여파 등으로 재산을 모두 날렸다. 6.25사변을 겪으면서 나는 14명 가족의 가장이 됐다. 피를 팔기도 했고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 역할도 했다.

-- 하우스보이 시절 기억나는 것은.

▲ 미군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우리 한국 사람들이 꿀꿀이 죽이라고 해서 깡통에 담아 나왔다. 이것을 찌개로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그냥 팔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종이, 담배 정도는 괜찮은데, 이쑤시개가 나오는 것이었다. 이 찌개를 먹다가 혀 등을 찔려서 피가 펑펑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미군 소령인 군목을 찾아갔다. 좋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문제를 이야기했더니 한국 사람들이 그걸 먹느냐면서 놀라워했다. 믿지 못했는지, 그 군목은 나를 데리고 시장으로 나와 찌개 두 그릇을 시켰다. 그리고 찌개를 먹었는데.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 그다음 날 '한국 사람들이 먹으니 음식 찌꺼기에 이쑤시개를 넣지 말라'는 공문이 한국에 있는 유엔군 전체에 나갔다.

의사 가운을 입은 이시형 박사
의사 가운을 입은 이시형 박사

[본인 제공]

-- 대구 의대는 어떻게 갔나.

▲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못 나가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나한테 묻지도 않고 원서를 냈다. 원래 나는 사범대학교에 갈 생각이었다. 입학시험까지 열흘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친구들이 가정교사처럼 나를 가르쳤다. 그 당시 친구들이 없었다면 대구의대에 못 들어갔다.

-- 본인의 단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매사에 철저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다. 책도 110권 냈는데 책의 내용이 철저하다면 어떻게 그 많은 책을 쓸 수 있겠는가. 나는 책 한 권 초안을 거칠게 완성하는데 일주일이면 된다. 철저하지 못해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독자들에게 완벽한 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천재 망상증이 있다. 천재도 아닌데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어도 못 하는 대구 촌놈이 미국 예일대학에 유학하러 간 것도 천재 망상증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이 망상증은 오랫동안 나를 밀어주는 힘이 됐다.

-- 본인은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가.

▲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인생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사회정신의학을 공부한 것도 남북 분단 상황 때문이었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과 회담도 하고 해야 하는데, 북한과 대화가 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사회정신의학을 공부했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한국의 전통 밥상은 제일 건강식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건강식이라고 내놓지 못한 것은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우리 농민들이 어떻게든지 유기농을 지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 농산물을 수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가 나의 큰 과제 중 하나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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