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를 가다] ⑤ 화학연구원 '국내 화학산업 성장 견인'
송고시간2022-10-03 08:05
국내 유일 화학 분야 국책연구원…소재·부품·장비 연구 주력
"'의약바이오 후보물질 개발·기후변화에 대응' 등이 새 임무"
[※ 편집자 주 = 1973년 서울 홍릉의 연구단지를 대체할 '제2연구단지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대전 유성구·대덕구 일원 67.8㎢ 면적에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가 조성됐습니다. 내년이면 출범 50주년을 맞는 대덕특구는 현재 30여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295개 연구소기업, 1천여개 벤처·중견기업, 다수 대학이 포진해 매년 수만개의 미래형 연구 결과물을 쏟아내는 국내 최대 원천기술 공급지로 성장했습니다. 연합뉴스는 대덕특구 내 연구기관 가운데 핵심 성과를 창출해내고 있는 10곳을 선정해 역사와 연구 성과, 중점 연구 분야 등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한 곳씩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산업 분야에서 필요한 화학 원천기술을 개발해 화학산업 선진화와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미혜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은 3일 연합뉴스에 "2019년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 규제에 대응해 공급망을 재편하고, 코로나19 유행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선제 대응해 정부출연연구원으로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빈곤에 시달리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한 견인차를 꼽는다면 화학산업이 빠질 수 없다.
1960년대 비료 공업에서 시작해 가발·신발 등 경공업 중심으로 수출 시대를 연 화학산업은 2019년 생산액 기준 226조원으로, 제조업 전체의 14.6%를 차지한다.
부가가치액은 75조원으로 제조업 전체의 13.5%를 차지하는 등 국가 제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화학산업 성장을 이야기할 때 국내 유일 화학 분야 국책연구원인 한국화학연구원을 빼놓을 수 없다.
1976년 9월 서울 동숭동에 임시 사무소를 마련한 화학연은 1978년 대덕특구에 터를 잡는다.
설립 당시 18명에 불과했던 인원은 현재 1천300여명으로 늘어났고 화학연의 성장은 국내 화학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설립 당시 국내에는 총 1천985개의 화학공업 기업이 있었으나 연구개발(R&D) 부서를 갖춘 곳은 15%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조직이 취약해 화학분석 시설이나 시험 기기를 제대로 갖춘 업체는 극히 드물었다.
일부 대학 연구기관이나 국립공업시험연구소 등 화학 부문 연구개발부서에서 지원받기는 했으나, 화학 산업 분야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미흡해 최종적으로는 화학연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화학연은 '국내 산업계가 원하는 화학·화학공업 부문의 연구개발과 기술을 축적·보급한다'는 설립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며 국내 산업 발전의 기반을 다졌다.
그 결과 1980∼90년대 선진기술을 국산화해 외국 기술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기술을 수출하는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국내 최초 환경친화적 산소계 표백제로 주목받은 '옥시크린'이 개발됐고, 1994년에는 10여 년의 연구개발 끝에 접착제·윤활제·껌·립밤 등에 첨가되는 정밀화학제품원료인 폴리부텐 제조 공정 기술을 국산화했다.
이를 계기로 연간 800만 달러 상당의 폴리부텐을 전량 해외에서 도입했던 한국의 위상이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크게 바뀌게 된다.
이 기술은 2010년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광복 이후 대한민국 100대 기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최대 성과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꼽을 수 있다.
1995년부터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 연구를 시작한 손종찬·이일영 박사팀은 2006년 미국 글로벌 제약사인 길리어드(Gilead Science)와 공동연구 후 2008년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 카이노스메드는 에이즈 환자 증가율이 높은 중국 내 상용화를 위해 2014년 중국 제약사 장수아이디에 후보물질의 중국 판권을 넘겼다.
이후 중국 내에서 임상 1∼3상을 거쳐 지난해 6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의 판매 허가를 받았고, 올해 치료제가 판매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에이즈 치료 신약을 독자 개발해 시판한 사례는 최초이다.
화학연에서 개발한 신약 후보 물질 가운데 처음으로 상용화된 신약이기도 하다.
화학연이 개발한 제초제도 해외에 진출했다.
고영관 박사팀이 국내 기업 팜한농과 공동 개발한 비선택성 제초제 '테라도'는 영국 등에서 진행된 150여 개 항목의 까다로운 안전성 시험에서 사람·동물·환경 모두에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효 속도는 기존 제품들보다 최대 10배가 빠르다고 화학연 측은 설명했다.
2018년 출시된 테라도는 28개국 이상에 특허를 등록한 데 이어 2020년 제초제 시장 최고의 무대인 미국에 진출했다.
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자원으로 전환하는 CCU(Carbon Capture & Utilization) 기술, 친환경 에너지원인 수소를 제조·저장·이동하는 기술,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촉매 기술 등 탄소중립 관련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5월 18개 화학 관련 민간기업들과 '탄소중립 화학기술 연구협의체'를 구성한 화학연은 향후 국가 정책 로드맵 수립, 국내외 연구기관 네트워킹 활성화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원천기술을 실증해 상용화로 연계하려고 전남 여수에 '탄소중립 화학공정실증센터'를 건설했다.
2019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 이후 국가 화학소재 기술 개발 허브로서 화학 소재 전략을 수립해 대응하고 있다.
불소 화학 소재·공정 연구실, 석유화학 촉매 연구실, 정보·전자 폴리머 연구실이 국가가 지정한 소재연구실(N-Lab)로, 화학소재 평가 및 실증화 연구시설은 국가연구시설(N-Facility)로, 화학소재·부품·장비 분야는 국가연구협의체(N-TEAM)로 각각 선정됐다.
이를 통해 지난해 수소차 연료전지·에너지 저장장치(ESS) 등의 핵심 불소 소재인 과불화술폰산 이오노머(PFSA) 소재 공정을 기술이전 했다. 공정이 매우 까다로워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를 국산화 한 것이다.
화학연은 코로나19 등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응한 의약·바이오 후보물질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2020년 6월 진단 키트, 백신·치료제 후보물질을 국내 기업에 기술이전 했고, 최근에는 감염병 관련 정책·연구 역량을 결집하는 싱크탱크인 '감염병 기술전략센터'를 유치해 국가 감염병 연구개발 방향을 선도할 계획이다.
이미혜 원장은 "우리 연구원은 국내 유일 화학 분야 국책연구기관으로,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개발 책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며 "1976년 창립 이래 화학산업 발전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국민 건강과 기후 위기 대응 등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며 "2050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목표에 어느 기관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뛰어난 연구성과를 창출하겠다"고 덧붙였다.
kjun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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