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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태영호 "나는 처음에 탈북 반대…2년간 가족끼리 다퉜다"

송고시간2022-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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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형제·친척들이 돈 빌려달라 했는데 거절한 것 후회"

"진보-보수 치열한 경쟁, 북한에 없는 일…한국의 미래 보여"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2016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태영호(60)는 한국 국회의원이다. 하루 중에 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탈북하자는 아내의 의견에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전했다. 가족들과 친척, 직장 상사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가족들과 계속 다투고 토론하면서 망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근본적인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 주민들 대부분은 6·25전쟁이 북침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태영호는 1962년 북한의 평양시 종로동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 과정인 평양외국어학원을 거쳐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외무성에서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로 재직할 때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망명했다. 한국에서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으로 근무했고 2020년 서울 강남 갑(甲) 국민의 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태영호 의원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태영호 의원

[촬영 정한솔]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평양건설건재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 시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혜산사범대학을 졸업한 어머니는 소학교(초등학교) 교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당 간부가 아니었다.

-- 그 당시로는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건가.

▲ 중산층 인텔리 집안이었다. 우리 집은 단층의 자그마한 집이었다. 방은 작았지만 큰 책장이 있었고 거기에 책이 가득했다.

-- 소득 기준으로 상위 1%에 들어가는 수준 아닌가.

▲ 그 정도는 아니다. 북한에서는 한국과 달리 교수들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다. 우리 집은 상위 15% 정도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창전인민학교, 평양외국어학원, 평양국제관계대학을 다녔는데, 초중고시절 학업성적은.

▲ 학교는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쳤고 성적순 명단을 게시판에 붙였다. 나는 학급에서 1∼5등을 유지했다. 창전인민학교에서는 반장을 했기 때문에 소년단에 가장 먼저 들어갔다. 소년단원은 붉은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 평양외국어학원은 북한의 엘리트 코스인데, 어떻게 들어갔나.

▲ 어머니가 근무했던 서문 인민학교는 북한의 당정 간부들이 사는 주택가에 있었다. 간부들이 찾아와 자신의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도 나를 그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건축가로 키워야 한다면서 반대했다. 당시 평양에서는 외국어를 하는 사람들을 통역관이라고 했고, 남의 심부름이나 하는 직종으로 낮춰 봤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당신이 세상을 그렇게 잘 본다고 하는데, 당 간부들이 왜 자기 아이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시키겠는가.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판단이 빠른) 간부들이 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부부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어머니의 뜻대로 됐다.

-- 평양외국어학원 분위기는 어떠했나.

▲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아랍어 등 모두 8개 어학과가 있었다. 학급당 20명씩이었는데, 영어과는 3개 학급이었다. 나는 영어과에 들어갔는데 주변 친구들 대부분은 간부 집 자녀들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게 되면 깜짝 놀라곤 했다. 2층짜리 양옥집인 데다 소련제 초콜릿, 남방 과일이 있었다.

2018년 출간하자마자 서점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던 태영호 자서전
2018년 출간하자마자 서점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던 태영호 자서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제관계대학은 어떻게 입학했나.

▲ 내가 14세 때인 1976년 당국은 중학교 2학년생 중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을 골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중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중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당시 함께 유학한 사람중 한 명이 현재 북한 외무상 최선희다. 당국은 그때 유학했던 사람들을 모두 외교관을 양성하는 국제관계대학에 보냈고 당연히 나도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그 대학은 교육부가 아닌 당 산하 학교다. 당시는 김일성종합대학 수준의 최고 대학이었다.

- 장인 오기수가 오백룡(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의 조카라고 하던데.

▲ 그렇다. 당시 북한에서 오백룡은 서열로 거의 다섯 번째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 친구 소개팅으로 아내 오혜선을 만났는데, 그녀는 오백룡의 조카인 오기수의 딸이었다. 당시 오기수는 군 정치 간부를 키우는 김일성정치군사대학 총장이었다. 그녀와 30분 정도 이야기해보니 소탈하고 겸손했다. 외모도 마음에 들었다.

-- 부인은 남편의 어떤 점이 맘에 들었다고 하나.

▲ 아내는 가문이 좋다 보니 자기 힘으로 운명을 헤쳐 나오지 않았다. 부모가 계속 길을 열어줬다. 아내는 내가 자기 힘으로 중국 유학을 거쳐 외무성까지 들어간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 아내도 평양외국어학원 출신인가.

▲ 평양외국어학원 4년 후배다. 우리 집 두 아이도 같은 학교를 나왔다. 스카이캐슬은 남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스카이캐슬은 더 높고, 이너서클도 강하다. 북한에서도 상류층에 진입하려면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 부부도 어떻게 하든 아이들을 평양외국어학원에 보내려 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학교별로 따지면 탈북자 가운데 평양외국어학원 출신이 가장 많다는 점이다. 해외로 많이 나가는 데다 학교에 다니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외국책들을 몰래 보기 때문이다.

-- 자녀들은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나.

▲ 큰아이는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작은 아이는 대학 재학 중이다. 두 아이는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북한에서 온 아이들일까 싶을 정도로 완전히 한국화됐다.

-- 첫째 아이가 몸이 안 좋았나.

▲ 병이 있었다. 북한에서 심했다. 내가 영국에 외교관으로 두 번 나간 것은 (외무성) 간부들에게 영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해외 외교관에게 교육비와 의료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영국은 외교관에 대해 무상으로 치료를 해준다.

6·25 납북자기념관 주최 행사에서 연설중인 태영호에게 우산 씌워주는 납북자 가족
6·25 납북자기념관 주최 행사에서 연설중인 태영호에게 우산 씌워주는 납북자 가족

[연합뉴스 자료사진]

-- 취미는 무엇인가.

▲ 책 읽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시간만 나면 책을 봤다. 주로 소설이나 역사 관련 책이었다. 어릴 때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탁구나 테니스를 한다. 북한에서는 의료시스템이 빈약하기 때문에 나이 서른 넘어서는 몸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체육을 하게 된다.

-- 영국에서는 골프를 하지 않았나.

▲ 당시 골프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한국인이 주영 북한대사 리용호(후에 북한 외무상)에게 영국 사회에 깊이 들어가려면 골프를 알아야 한다면서 배울 것을 권했다. 본인이 보안을 확실히 지켜주겠다고 해서 한국인이 없는 시간대를 선택해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몰래 배웠다. 그런데 그 골퍼는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이 사실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보도가 나오자 북한의 통일전선사업부가 김정일에게 "런던의 북한 외교관들이 일은 안 하고 한국인 골퍼 따라다니며 골프 배우고 있다"고 보고했다. 화가 난 김정일이 런던에 전보를 보내서 "당신들 지금 골프 배우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골프를 그만두게 됐다. 한국에 들어와서 연합뉴스의 그 특파원을 만나 "당신 때문에 내 목이 날아갈 뻔했다"고 (농담으로) 말한 적이 있다.

-- 몇 시에 일어나나.

▲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운동과 샤워를 한 뒤에 밤새 들어온 메일과 카톡을 체크해 급한 사안을 처리한다. 이어 뉴스를 점검한다. 의원회관에는 오전 7시30분 정도에 도착한다. 귀가해서 잠자는 시간은 오후 11시께다.

--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내가 외무성에 들어갈 때 어머니는 "성공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남들보다 10분 먼저 출근하고 이를 평생 유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10분 먼저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내 좌우명이다.

-- 본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도전 정신이 있는 편이다. 북한이 2011년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했는데, 당시 외무성 사람들 모두가 반대했지만 나는 김정일에게 보고서를 올려 관철했다. 단점은 너무 일에 몰두하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한 점이다.

주영 북한 대사관 전경
주영 북한 대사관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 탈북은 누가 제안했나.

▲ 아내였다. 북한에서는 외교관으로 나가게 되면 자식 1명을 평양에 반드시 둬야 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가 생겨서 큰아이가 영국으로 오게 됐다. 그때가 탈북 2년여 전인데, 아내는 "이것은 기적이다. 이 기적을 우리가 이용하지 못하고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먼 훗날 아이들이 부모를 원망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 이후 떠나자고 결정할 때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 얼마나 걸렸나.

▲ 2년 6개월 정도 걸렸다.

-- 그 기간에 계속 고민한 것인가.

▲ 고민한 정도가 아니라 집안에서 계속 다퉜다. 아내는 아이들 장래를 생각해서 떠나자고 주장했다. 나는 반대했다. 북한에 있는 형제들, 보증을 서서 나를 영국에 보내준 (외무성) 선배들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 자녀들은 어떤 입장이었나.

▲ 아이들 심정은 자유로운 세계로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3∼4년 주기로 영국과 북한 교육을 번갈아 받다 보니 북한이 반인권, 반인륜 국가라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끝까지 반대하면 할 수 없으며, 부모의 최종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었다.

-- 본인은 왜 입장을 바꾸게 됐나.

▲ 내 입장이 하루아침에 확 바뀐 것은 아니다. 북한 체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놓고 집안에서 토론하면서 서서히 생각이 변했다.

-- 탈북 당시 어머니가 북한에 생존해 계셨는가.

▲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 장모님은 살아 계셨다. 누님과 남동생, 처남들도 있었다. 그분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 탈북 당시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을 듯하다.

▲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마음에 가장 걸린다.

2016년 망명직후 국회 정보위에서 처음으로 모습 드러낸 태영호
2016년 망명직후 국회 정보위에서 처음으로 모습 드러낸 태영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 남북한이 통일돼서 내 발로 고향에 가는 것이다. 친구와 친척들이 살아있다면 만나서 사죄하고 싶다.

--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 내가 북한에 있을 때 형제나 친척들보다 돈이 좀 있는 편이었다. 북한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친척들이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당시 그 정도는 돌봐줬어도 생활에 큰 축이 나지 않았는데, 도와주지 못했다.

--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다.

-- 북한의 빈부격차는 한국보다 덜한가.

▲ 북한은 남한보다 심하다. 북한에서 말단(최하위층)에 있는 사람은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든 경우가 있다. 내가 말하는 남한의 빈부 격차 문제는 국가에 충분한 재력이 있는데도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태영호의원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태영호의원

[촬영 정한솔]

--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전략적인 계산이 있다. 한미가 어떤 대응 조처를 해도 북한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은 전술핵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메시지라고 본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나.

▲ 김정은 체제가 존재하는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남한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자고 하는데, 불가능하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두 가지 트랙으로 가야 한다. 하나는 핵무장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체제가 무너질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정보를 유입시키고 교류도 해야 한다.

-- 북미수교와 북한방송 개방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 북핵 문제는 북한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소프트 파워로 어떻게 (북한 체제를) 흔들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한다. '선 북미수교, 후 문제 해결'이 키신저 방식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한번 해보자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 그런 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과 같은 것 아닌가.

▲ 아니다. 북한과 대화와 교류를 하면서 음지에서의 활동도 해야 하는데, 문 정부는 북한에 정보를 유입시키는 국정원의 모든 예산을 없애버렸다. 이는 김정은 정권과 대화해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내부 변화를 통한 붕괴가 아니고 지도자 간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만나고 와서 북한의 핵 문제는 해결됐고 북한은 핵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그럴 힘도 능력도 없다고 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전략적 실수다.

-- 북한 입장에서는 핵을 가지려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 북한은 재래식 무기로는 안 되니까 핵으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생각하나.

▲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도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면 무엇을 해준다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인프라를 건설해준다, 항만을 만들어준다고 하지 말고 인도적 문제는(북핵 문제에서) 떼어서 보건 협력, 신약 지원 등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201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기념위원회 행사에 참석한 태영호(앞줄 가운데)
201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 70주년기념위원회 행사에 참석한 태영호(앞줄 가운데)

[연합뉴스 자료사진]

-- 북한 주민들은 6·25 전쟁이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모르나.

▲ 나는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것을 덴마크에서 외교관으로 일할 때 여러 책을 보고 알았다. 북한 주민들 대부분은 북침으로 알고 있다. 북한 사람들이 외국에 나와서 '이게 사실일까' 하고 느끼는 것이 6·25전쟁을 김일성이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충격을 받는다.

-- 덴마크 근무 시절 영화 태백산맥을 봤다고 하던데.

▲ 당시 사무실에 같이 있었던 북한 동료들과 함께 봤다. 그때가 1997년인데,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남로당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영화가 나올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이런 정도까지 수용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김범우(배우 안성기)가 남로당 보성벌교위원장인 염상진(배우 김명곤)에게 "당신들의 혁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이념은 훌륭하지만 당신들은 인간 생명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말이 (충격적으로) 와닿았다.

-- KAL기 폭파사건의 김현희와는 학교 동문인가.

▲ 평양외국어대학의 부속학교가 평양외국어학원이다. 김현희는 평양외국어대학을 나왔지만 평양외국어학원 출신은 아니다. 나는 평양외국어학원을 졸업했으나 평양외국어대학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두 학교는 울타리도 없이 같은 공간에 있다. 북한에서는 같은 학교로 본다.

-- 김현희 가족이 숙청됐다는 게 사실인가.

▲ 가족들이 지방으로 추방됐다.

-- 김현희가 투항한 것이 아니라 잡힌 것인데, 왜 추방하나.

▲ 원래 김현희는 자살해야 했다. 그렇게 서약했을 것이다. 자살해야 하는 순간에 그러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배반으로 본다.

-- 남한에서 김현희를 만났나.

▲ 아니다. 김현희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된 이유는.

▲ 김정남은 김정은의 이복형이다. 김정일은 처음부터 김정남을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출생(정통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철은 지도자가 되기에는 몸이 너무 약하다. 김정철이 에릭 클랩턴 공연을 보러 영국에 왔을 때 3박 4일을 호텔에서 같이 지내봐서 안다.

-- 장성택은 고사기관총으로 처형됐나.

▲ 소문이 잘못된 것이다. 장성택의 측근 부하들은 공개적으로 처형됐고 고사기관총이 사용됐다. 그러나 장성택이 처형되는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장성택의 여성 편력 소문은 사실인가.

▲ 사실이다. 그가 처형된 뒤에 북한에서 여배우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가 죽기 전에도 간부들 사이에는 그런 소문이 있었다.

지난 9월21일 한 토론회에서 성 김 미 국무부 특별대표와 대화하고 있는 태영호
지난 9월21일 한 토론회에서 성 김 미 국무부 특별대표와 대화하고 있는 태영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와서 보니 남한의 정치는 어떠한가.

▲ 많은 사람이 한국의 정치가 실종됐고 양극화됐다고 지적한다. 자유로운 토론이나 경쟁 선거 시스템에서 살지 않았던 나로서는 남한에서 보수와 진보가 치열하게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이런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고 본다. 동북아시아에서 대한민국만큼 정치가 공개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나라는 없다.

-- 야당 쪽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은 없었나.

▲ 없었다. 민주당 주류의 많은 사람은 나 같은 탈북민에 대해 거부감이 강하다. 내가 국회의원 공천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이 반대했고 당선된 다음에는 나를 배신자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민주당이 나 같은 사람과 함께 정치하자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한국의 좌파에 대한 생각은.

▲ 한국의 좌파나 진보는 서방 국가들과 결이 다르다. 서방국가 좌파는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한데, 한국 좌파는 그런 것 같지 않다.

--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대의민주주의를 믿는 정치인이라면 김일성주의자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이 종북주의자인지 여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내가 살아있는 기간에 내 발로 내 고향에 가보는 것이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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