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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김종인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준비안된 사람들이었다"

송고시간2022-1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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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 후보시절, 당선후, 취임후 정책방향 일관성 없어"

"윤석열 정부, 비전 발표하고 비서실ㆍ내각 조속 정비해야"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김종인(82)은 60년간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여야를 넘나들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각 정당이 위기 시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후 무엇을 할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과 당선 이후 생각이 바뀌어서 일관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이른 시일 안에 비전을 제시하고 내각과 비서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인은 한국외국어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강대 교수, 여야 비례대표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지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종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종인

촬영 정한솔

-- 어린 시절 어떻게 자랐나.

▲ 내가 4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할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 아버지가 외국에 공부하러 갔다고 했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시신이 실려서 나가는 것을 봤으니 그런 말씀 하지 말라고 했다.

-- 가족 생계는 누가 책임을 졌나.

▲ 할아버지와 백부가 도와주셨다. 백부는 사업을 했다.

--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 할아버지(김병로)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그분을 많이 존경했다. 할아버지는 자기 인생 원칙을 정해놓고 그대로 사시는 분이었다. 일본 강점기에 변호사로 일했지만, 재산이 거의 없었다. 독립운동가들 뒷바라지를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공직 생활을 보면, 그런 분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직했다.

-- 본인은 소신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스타일인가.

▲ 나는 할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자랐다. 내가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려 할 때 한국에 유신체제가 들어섰다. 그때 지도교수는 "너처럼 소신대로 말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소신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가던 시절에 왜 독일을 선택했나.

▲ 나 스스로 판단해서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게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나에게 앞으로 더 좋을 것으로 봤다. 그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분단돼 있었고 자원도 없다.

-- 부인은 어떻게 만났나.

▲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재익의 소개로 만났다. 그는 나와 친한 사이였지만 관계가 틀어졌다. 경제수석으로서 정책을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앞에서 금융실명제를 놓고 김재익과 다툰 일이 있었다. 그는 금융실명제를 시행하자는 것이었고 나는 국내 여건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전두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경제수석은 이 사안에서 빠지라고 했다. 자존심이 상한 김재익은 그때부터 나를 욕하고 다녔다.

1957년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이 김병로 대법원장 일행을 접견하는 모습
1957년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이 김병로 대법원장 일행을 접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평소 활력이 넘치는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 나는 지나간 일은 생각을 안 한다. 사람은 과거 일을 생각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건강은 마음으로부터 온다. 아등바등하고 집착하면 건강에 해롭다.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골프를 친다.

-- 요즘은 무엇을 하며 지내나.

▲ 세상이 상당히 빨리 변하고 있다. 세계정세를 판단하고 그것이 국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을 많이 한다. 책도 본다. 이런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 그동안의 삶에서 후회되는 일은 없나.

▲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 삶의 원칙은 무엇인가.

▲ 나는 확신이 없는 것은 절대 안 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하지만, 애매모호하면 하지 않는다. 아무리 윗사람이 뭐라고 해도 내 소신에 맞지 않으면 안 한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한테 부탁하거나 굽신거린 적이 없다. 자기들(정당들)이 필요에 의해 도와달라고 해서 내가 수용 여부를 결정했을 뿐이다. 치사하게 자리를 바라고 일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종속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 비례대표 의원직을 많이 하지 않았나.

▲ 나는 비례대표 의원을 5차례 했다. 한 번도 비례대표 의원을 시켜달라고 부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전문 분야(재정·조세)에서 소신대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 감각은 공부로 되는 게 아니다. 직관이 발달해야 한다. 나는 직관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역사책을 많이 읽으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의 75년 정치사는 알아야 한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시절의 김종인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시절의 김종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역대 대통령 중 성과가 있었던 분은 누구인가.

▲ 이승만은 대한민국 기초를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정부를 수립하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한미 방위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분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파행했고 말년에 좋지 않은 국면을 겪었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경제발전의 업적을 남겼다. 그도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몰라서 불행을 겪었다. 전두환은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사람이다. 노태우 당시에는 소득분배가 잘돼서 중산층이 많이 생겼다. 경제 인프라도 건설됐다.

-- 김영삼 대통령 이후에는 어떠했나.

▲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에 빠져서 한국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도 평가할 만한 게 없다고 본다.

-- 너무 가혹한 평가 아닌가.

▲ 김대중은 김정일과 6.15선언을 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것 외에 특별히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노무현은 수평적 문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대통령을 그런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권위주의는 시대가 바뀌면 (저절로) 청산될 수 있다.

--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 말할 수 없다.

--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출범 6개월밖에 안 됐으니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그런데 무엇을 지향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공정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솔직한 사람인 것 같기는 한데, 검찰총장에서 불과 1년 만에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산업단지 방문한 박정희
산업단지 방문한 박정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역대 대통령의 공통적 특징은 무엇인가.

▲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후보가 된 후, 당선된 후 등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 일관성이 없다.

-- 그 원인은 무엇인가.

▲ 계획과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 역대 대통령들이 계획이 없었다는 것인가.

▲ 대부분이 그렇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외인 경우가 이승만과 박정희다. 박정희는 이 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해방하겠다는 철두철미한 생각을 가졌다.

-- 역대 대통령들의 성격적 측면은 어떤가.

▲ 전두환은 자기가 한번 결심한 것도 논리적으로 설득을 당하면 고치는 장점이 있었다. 노태우는 온화했고. 박정희는 머리가 예리했다. 문재인은 나한테 부탁을 해서 내가 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들었지만, 그 후에 (고맙다는) 전화 한번 걸어오지 않았다. 박근혜에게도 도움을 줬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 전화통화도 없었다.

--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 용의주도하게 철저히 준비한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 정치의 수준이 떨어지면 나라의 수준도 낮아진다. 일본을 보면, 자민당 혼자서 몇십 년에 걸쳐 집권하다 보니 나태해지고 정치인 수준이 떨어졌다. 일본 경제도 동반해서 쇠잔해졌다.

--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까.

▲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처한 상황으로 볼 때 또다시 경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사 시절의 노태우
육사 시절의 노태우

연합뉴스 자료사진

-- 노태우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데, 어떻게 만났나.

▲ 노태우가 (내무부장관 등을 거쳐) 민정당 대표가 됐다.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나의 향후 거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당신이 경제를 맡아서 도와줘야 할 테니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당선 후에 나를 찾지 않았다. 1년 6개월 후에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보건사회부 장관을 제안했다.

-- 보사부 장관 다음에 바로 청와대 경제수석을 한 것인가.

▲ 보사부 장관 시절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았는데, 경제에 (부동산가격 폭등 등) 위기 상황이 닥쳤다. 보사부 장관이 된 지 8개월 후인데. 노태우는 나에게 "내 옆으로 와야 하겠다"고 했다. 경제수석으로 일하라는 뜻이었다.

-- 그 제안을 받아들였나.

▲ 나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부총리(경제기획원장관), 재무장관과 손발이 맞아야 한다면서 그 후보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통령이 언급하는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일을 못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수석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을 문서로 보고할 테니 그걸 보고 그대로 할 생각이면 나를 청와대로 데려가고 그렇지 않으면 임명하지 말라고 했다. 한 달 후에 대통령은 자기가 원했던 사람을 제치고 내가 이야기한 대로 부총리와 재무장관을 임명했다. 서면으로 약속하고 청와대에 들어간 것이어서 대통령은 내가 하는 일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다

1988년 9월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1988년 9월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연합뉴스 자료사진

--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

▲ 2002년 대선 전에 당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한번 보자는 전화를 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에 출마하려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이런(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분도 하려는 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는 1주일 만에 또다시 찾아와서는 "꼭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바뀔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자문에 응했다.

-- 노무현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봤나.

▲ 대통령선거 전년도인 2001년의 12월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지지율은 1.5%밖에 안 됐다. 당시 민주당의 유력후보는 이인제로, 지지율이 33% 정도 나왔다. 그런데도 내 느낌으로는 노무현이 당선될 것 같았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이었는데 그는 출생, 성장환경 등 모든 면에서 서민적이었기 때문이다.

--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 정책을 많이 폈나.

▲ 노무현은 오히려 부자를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 그래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의존했다. 당시에는 이 연구소가 가장 실질적인 보고서를 낸다는 소문이 있었다.

영동고속도로 개통 당시 박정희와 박근혜
영동고속도로 개통 당시 박정희와 박근혜

연합뉴스 자료사진

-- 박근혜 대통령과는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어떠했는가.

▲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떨어지고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당선됐다. 한나라당에서는 홍준표 대표체제가 무너졌고 박근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됐다. 그가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얼굴을 내놓고는(공개적으로는) 못 도와준다고 했더니 "내가 아닌 나라를 위해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국회의원 후보 공천과정에서 박근혜와 갈등이 생겼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려면 이를 입법할 수 있는 전문 의원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는 그런 사람들은 공천에서 배제하고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천했다. 그와 헤어졌다.

-- 대선 때 또다시 박근혜를 도와주지 않았나.

▲ 그렇다.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반드시 실천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경선준비위원장이 됐다. 그가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할 때도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도록 했고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그렇게 했다. 본격적 선거에 들어가서는 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아서 선거공약을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 후보가 공약에 관해 나의 대면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했다. 그러더니 나와 상의도 없이 재벌개혁과 관련한 특정 주요 공약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 그래서 결별했나.

▲ 나는 방송에 출연해서 "박 후보가 로비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선대위 간부들 10명과 함께 호텔 비즈니스룸에서 나를 만나 항의했다. 함께 온 사람들은 박 후보가 로비를 받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했다. 나는 (같이 일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지 왜 그걸 굳이 추궁하느냐고 했고 박 후보는 소리를 지르고 나가버렸다.

-- 그것으로 박근혜와 더는 접촉하지 않았나.

▲ 대통령 후보 등록하는 날 박근혜는 나한테 전화해서 (경제민주화에 대해) 생각을 달리(우호적으로)할 테니 계속 도와달라고 했다. 결국, 나는 경제민주화는 박 후보가 제일 잘할 것이라는 기자회견까지 했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 시절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한 글자도 남겨놓지 않고 모두 지워버렸다. 박근혜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의 문재인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의 문재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 후에는 문재인을 도왔나.

▲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사람들은 20년 장기집권을 생각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층이 35%이고 그의 주변이 깨끗해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80석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민주당은 안철수의 탈당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그래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한국도 일본처럼 보수 단일정당 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는 일본의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당 간 경쟁이 없는 정치는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이 우리 집에 사흘간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민주당에 가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전략에 의해 민주당은 제1당이 됐고 여소야대가 이뤄졌다.

-- 이후 문재인 정부 성과는 어떠했나.

▲ 박근혜 정부가 무너졌으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문재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제일 잘했다는 것이 북한 문제였는데, 성과로 나온 게 없다.

-- 대선후보 윤석열을 지원하지 않았나.

▲ 경선하는 과정에서 윤석열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해서 조언을 해줬다.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선대위를 살펴보니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대위를 개편하자고 했더니 선대위를 해체해버렸다.

2012년 12월 기업어음 금융사기 사건 수사결과 발표하는 윤석열 중앙지검특수부장
2012년 12월 기업어음 금융사기 사건 수사결과 발표하는 윤석열 중앙지검특수부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준은 어떠한가.

▲ 국회의원 중 적어도 몇 사람은 큰 뜻을 갖고 자기를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5년이 지났는데도 의회에서 지도자감이 제대로 안 나오는 것이다.

-- 국회가 경제 세력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나.

▲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하는 것은 두 가지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시스템과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시장경제에서 파생하는 부정적 결과를 의회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수정한다. 지금은 의회 시스템이 잘 안 돌아가고 있다. 로비 때문이다.

-- 로비가 심각한 수준인가.

▲ 밖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입법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지만 의회가 규제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 후원 등을 통한 로비 때문이다. 국회에는 의원 보좌관을 하다 기업에 들어간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이런 현상이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종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종인

촬영 정한솔

-- 국민의힘 당 대표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나.

▲ 여당의 입장에서는 2년 후 총선이 매우 중요하다. 거기서 실패하면 여당은 희망이 없다. 이 선거를 효율적으로 치를 사람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 권력에 너무 취해 있는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안 된다.

-- 현 정부에 조언한다면 무엇이 있나.

▲ 방향을 빨리 설정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적어도 무엇을 지향하는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 맞춰 내각과 비서실을 정비해야 한다.

-- 정치권에서 다시 부르면 나갈 생각이 있나.

▲ 더는 정치에 흥미가 없다. 내가 무엇을 하려면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게 없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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