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딸 때문에 시작…나누니 행복" 딸바보 기부자 이상국씨
송고시간2022-11-20 09:05
여덟 식구 뒷바라지하며 생활비 아껴 9년간 4천100만원 익명 기탁
"내가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게 당연…더 따뜻한 세상 되기 바라"
(증평=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투자의 달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워런 버핏은 돈 버는 일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2006년 전 재산의 85%를 자선단체 기부하겠다고 깜짝 발표한 후 연이어 거액을 사회에 내놓고 있다.
충북 증평에서 원룸 임대업과 주식투자업을 하는 이상국(63)씨는 이런 버핏을 롤모델 삼아 9년째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껏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을 통해 4천100만원이 넘는 돈을 내놨다.
여유 있는 사람한테는 그리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한 달 벌이로 빠듯하게 생활하는 그에게는 적잖은 돈이다.
그는 기부 활동을 주변에는 철저히 비밀로 한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최근에야 알았다.
매번 신분을 감춘 채 기부처에 성금을 내놓고 자리를 뜨기 일쑤여서 그 흔한 기념사진 한 장 없다.
뒤늦게 그의 선행을 알게 된 사회복지 공무원 추천으로 지난 9월 충북도지사 표창을 받았지만, 그날 받은 상패 역시 가족의 눈을 피해 곧바로 창고 안쪽에 자리 잡았다.
그는 "젊었을 때 성철 스님의 책에서 읽은 '좋은 일을 하면 생색내지 마라. 그 순간 자랑하기 위해 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글귀가 뇌리에 박혀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그가 큰맘 먹고 연합뉴스 취재진 앞에 섰다.
각박해지는 세태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작으나마 다른 사람들의 기부 욕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89세 노모와 아내, 그리고 슬하에 다섯 자매를 둔 대가족의 가장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 살림과 육아를 도맡는 주부이기도 하다.
식구 챙기는 일만으로도 하루 해가 짧은 그가 콩 한 쪽이라도 나누려고 노력하는 배경에는 장애가 있는 큰딸(25)이 계기가 됐다.
그는 몸이 불편한 딸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돌봤다. 또래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곁에서 용기를 북돋워 주며 친구 같은 아빠 역할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픈 손가락'인 딸이 2014년 밝은 모습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광경은 그에게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의 가슴 졸임과 노력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는 당시의 감격을 전하고자 딸이 입학한 학교에 장학금 100만원 기탁했다. 그게 첫 기부였다.
이후 그는 매년 학교에 장학금 100만원씩을 내놓는다.
딸이 자주 찾던 교육도서관에는 아동도서 260권(300만원 상당)을 엄선해 보냈다. 딸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올바른 생각과 지혜를 배우며,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딸이 군민장학회에서 2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을 땐 그 금액만큼 다시 장학금을 기탁했다.
그는 "세상에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면서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년 가까이 된 원룸의 임대 수입과 아내의 월급으로는 여덟 식구 생활도 빠듯했다.
하지만 그는 기부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늘려나갔다.
주식투자로 약간의 여윳돈이 생기자 2017년부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두 달마다 10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이렇게 기탁한 돈이 벌써 2천700만원에 이른다.
이씨는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꾸준히 기부를 이어가는 게 내 작은 행복"이라면서 "워런 버핏처럼 평생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부를 통해 혜택을 보는 건 오히려 나다. 비록 돈은 나가지만 마음이 편해지고 깊은 행복감을 느낀다"면서 "기부문화 확산으로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jeonc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2/11/20 09: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