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살인사건으로 고아된 형제 직접 키워낸 김경자 씨
송고시간2022-12-04 08:00
"하루 아침에 홀어머니 잃은 아이들…당연히 키워야겠다고 생각"
범인 가족이 찾아오기도…"아이들 상처없이 자라도록 각별히 신경"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힘든 시간을 겪은 형제가 씩씩하게 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저를 '엄마'로 소개할 때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지난 2일 부산 사상구에서 만난 김경자(63)씨는 살인사건으로 숨진 A씨의 두 아들을 키워낸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가 두 아이를 키우게 된 사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편 없이 혼자서 형제를 키우던 A씨는 김씨가 운영하는 사상구의 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냈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A씨 가족이 연제구의 한 모자원으로 이사를 가면서 더는 만나기 어려워졌다.
A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았던 김씨는 두 형제를 계속해서 돕고자 당시 모자원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김씨는 "방학이면 우리 집에 데려와 친자식인 삼남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놀도록 했다"며 "함께 소풍도 가고 피아노와 공부를 가르치며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가 초등학생 5학년과 중학생 1학년이 되던 해, A씨가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경찰이 아이들에게 친척이나 연락할 만한 곳을 물었는데, 아이들이 김씨를 이야기한 것이다.
김씨는 "처음 경찰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며 "아이들만 집에 남겨져 있다고 해 곧장 달려가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두 형제를 지켜본 김씨는 고민 없이 이들을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김씨는 "양육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전혀 없고, 당시 친정어머니와 남편, 삼남매 모두 '좋은 일을 하자'며 흔쾌히 동의해 준 덕에 이들 형제를 식구로 맞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친인척이 없던 A씨를 위해 장례를 직접 치른 후 아이들을 전학시키는 등 절차를 밟았고, 이후 위탁가정 자격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사춘기인 두 아이를 데려와 직접 양육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로를 두고 다툰 적도 많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상처 없이 잘 자랄 수 있을지 머릿속은 항상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 범죄 피해자의 자녀들과 함께 살다 보니 불안한 적도 있었다.
A씨의 살인사건 이후, 범인의 가족이 김씨에게 찾아와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김씨는 "두 형제를 지원하겠다며 회유했지만 '말도 안 된다'며 거절했다"며 "범인은 20년이 넘는 형을 선고받아 그나마 안심했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해코지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키운 두 아들이 장성한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그는 "얼마 전 군대 간 첫째가 감사를 표하는 편지를 보내 눈물이 났다"며 "평소에는 '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으로는 부모로 생각해주는 것 같아 오히려 고맙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김씨의 공로를 인정해 지난달 29일 '제15회 범죄피해자 인권대회 포장 전수식'에서 정부 포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김씨는 앞으로도 두 아들과 함께 가족으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길 꿈꾼다.
김씨는 "아이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더라도 평소 안부를 묻고 명절이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느 가족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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