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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짓값 또 폭락] ②2년마다 반복 '폐지 수거난'…악순환 끊을 방법은(끝)

송고시간2022-12-10 06:30

민간에 맡겨진 폐지 재활용…"정부·지자체 적극 역할 필요"

"폐지 수거 노인 1만5천명, 널뛰는 폐짓값에 늘 생활 불안"

(서울·양주·고양=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정한솔 인턴기자 = 20만여t.

지난 10월 기준 제지회사(14만4천t)와 폐지 압축장(5만8천t)에 쌓인 폐지 재고량이다. 1년 전 같은 시기보다 각각 3천t과 1만5천t 불어났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 7월부터 경기 양주와 안성, 대구 등 전국 8곳의 공공 비축창고에 보관하는 폐지 더미도 1만5천500t이 넘는다.

1년 새 전국 곳곳에 3만3천t이 넘는 폐지가 더 쌓였다는 의미다.

[폐짓값 또 폭락] ②2년마다 반복 '폐지 수거난'…악순환 끊을 방법은(끝) - 1

관련 업계에서는 세계적 경기 불황이 계속되는 만큼 당분간은 재고가 늘어날 뿐 줄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폐지 재고가 계속 쌓이는 현상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2018년 이후 2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폐지 자원 순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정부·지자체·기업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폐지 재고가 쌓일 때마다 널뛰는 가격 때문에 생활고를 겪는 폐지 수거 노인들을 위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폐지를 실은 리어카 행렬
폐지를 실은 리어카 행렬

지난 11월 서울 마포구의 한 재활용 업체 앞에 노인들이 수거한 폐지 리어카가 줄지어 서 있다. [촬영 이상서]

◇ 2018년에도, 2020년에도 등장했던 '폐지 산'

2018년 1월 중국이 종이 등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폐지 가격은 전월 대비 31% 떨어진 kg당 90원(압축장 기준)으로 내려앉았다.

폐지 수거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아파트 단지 등에서 폐지나 폐비닐, 폐스티로폼 등을 걷어오던 재활용업체가 수거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폐짓값이 떨어지면서 '수거할수록 손해'라는 게 업체의 입장이었다.

결국 석 달 후인 같은 해 4월 주요 제지업체들이 수도권 일대에 적체된 폐지 2만7천t을 긴급히 사들이기로 하면서, 수거 거부 사태가 일단락됐다.

보통 물량이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사들이지만, 쌓인 폐지를 우선 사들여 수거 거부 사태를 해소한 것이다. 환경부도 제지업체가 선매입하면서 발생한 물류비 등 추가 비용 중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2020년 2월에도 중국의 폐지 수입 축소로 폐지 가격이 압축장 기준 56원까지 떨어지자 수도권 등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 거부를 예고하는 업체가 생겨나면서 또 한 번 위기가 있었다. 당시 제지사 기준 폐지 재고량은 9만6천t으로, 그해 연평균 재고량(8만8천t)보다 약 8천t 많았다.

업체들은 폐짓값이 내려가자 폐지와 이물질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으면 폐지를 수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수거한 폐지를 이물질과 분리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 채산성이 악화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환경부가 예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즉시 공공 수거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경고하자, 수거운반 업체는 수거 거부 의사를 철회했다.

[제작 정한솔]

[제작 정한솔]

◇ "정부·지자체·기업의 적극적 역할 필요"

이처럼 잊을 만하면 폐지 수거 대란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면서 정부나 지자체, 기업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상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르고, 폐지 수거 노인 등 사회 취약 계층이 어려움을 감당하는 만큼 폐지 재활용 문제를 단순히 민간 영역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이번 폐지 대란의 큰 원인이 세계적인 경기 불황은 맞지만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일"이라며 "정부나 지자체의 대비가 충분했다면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공비축창고를 운영하는 등 선제 조처를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활용 수거 과정의 대부분이 공동주택과 민간 재활용 업체가 개별 계약을 통해 진행되거나 고물상 등이 수거해 넘기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 소장은 "정부의 역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업의 책임"이라며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 품목에 폐지를 포함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PR은 제품 생산자에게 폐기물이나 포장재 일정량을 재활용하도록 의무를 주고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부과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로 2003년 1월부터 시행됐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에 근거해 재질 개선 정도에 그쳤던 생산자의 책임을 폐기와 재활용까지 확대한다는 취지다.

현재 이 제도 대상은 형광등·타이어 등 8개 제품군과 종이팩·금속 캔·유리병·합성수지포장재 등 4개 포장재군이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한국환경공단 제공]

정부는 폐짓값을 둘러싼 상황을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지만, EPR 등의 기타 제도 도입 등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EPR 품목에 폐지를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르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EPR 본래 취지가 재활용률을 올리려는 것인데 이미 폐지는 다른 품목보다 재활용률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폐지를 EPR에 추가할 경우, 생산 단가가 올라가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이러한 점을 살펴 중장기적으로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폐지 수거 노인·영세 고물상 대책 있어야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주문하는 이들은 폐지 수거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사회적 취약계층이라 할 수 있는 폐지 줍는 노인과 영세고물상 등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배재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연구위원은 "폐짓값이 폭락할 때마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 계층은 폐지로 생계를 유지하는 고령자"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폐지 수거 노인에 대한 실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과거 지자체 단위로 비정기적으로 진행된 적은 있으나, 지역별로 항목도 다르고, 담당자의 주관성도 커서 신뢰도가 낮다는 게 배 위원의 지적이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시행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폐지 노인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법안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각 지자체 자료와 노인실태조사 통계 등을 활용해 추정한 전국 폐지 수집 노인은 최소 1만4천800명에서 최대 1만5천181명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10월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때 폐지 노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한 상태"라며 "이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휴식 중인 폐지 수거 노인들
휴식 중인 폐지 수거 노인들

지난 11월 서울 마포구 한 재활용업체 앞에서 노인들이 폐지를 수거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촬영 이상서]

재활용 업계는 해당 업종이 가진 공익성을 강조한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재활용 업체를 운영하는 김만곤(56) 사장은 "노인 120여 명이 수거한 폐지가 하루에만 11t이 넘는다"며 "이런 점을 살펴 폐짓값이 떨어질 때만이라도 나라에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지사와 정부가 공동으로 '가격 안정화 기금'을 마련해 폐지 최소 가격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주섭 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은 "폐짓값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졌을 때 이를 보전해 주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폐지 수거 노인들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국가적 과제라 할 수 있는) 재활용 분야에서 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공익적인 업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3월부터 폐지 수거 노인을 대상으로 실태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고, 내년 초에 전국 단위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청취해 이에 걸맞은 지원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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