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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김재련 "정치인들, 박원순사건 피해자에 제대로 사과하라"

송고시간2023-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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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정치인·방송인·검사·변호사 등이 피해자 2차 가해"

"성폭력사건 가해자들 사회적 영구퇴출은 바람직하지 않아"

"나는 가난한 농부의 딸…누가 힘들어한다면 돕고 싶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김재련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김재련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김재련(50)은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변호사다.

그는 '노란 머리, 자살시켜야 한다' 등의 온갖 욕설을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여성계 원로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고, 친한 친구가 절교를 선언해도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길을 묵묵히 갔다.

그동안 이 사건 피해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소원을 들어달라, 안아달라", "결혼하려면 섹스를 알아야 한다", "혼자 있느냐", "내가 가겠다", "향기 좋아 킁킁" 등의 문자가 지속해서 왔고 구체적인 성행위를 묘사하는 문자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의 일부 지지자들은 피해자가 "사랑해요", "꿈에서는 돼요" 등의 문자를 보낸 '꽃뱀'이라면서 성폭력, 성희롱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국가인권위(2022년 1월)와 행정법원(2022년 11월)이 박 전 시장의 혐의를 인정했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는 것은 진영논리에 매몰돼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2차 가해를 했던 정치인들이 진솔하게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996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그는 200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여성의전화와 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변호사.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개방직), 국가인권위 성차별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고려대 의대생 성폭행 사건(2011년), 30대 남성의 60대 여성 성폭행 사건(2012년)의 피해자 측 변호사를 맡기도 했다.

현재 법무법인 온세상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김재련과 세쌍둥이 아들들
김재련과 세쌍둥이 아들들

[본인 제공]

-- 고향은 어디인가.

▲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에서 태어났나. 1남 4녀 중 막내였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는데, 농지가 없어서 외가로부터 빌렸다. 부자였던 외가는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이 안타까웠기에 도와준 듯하다. 나중에는 언니들과 오빠가 객지에 나가 돈을 벌어서 그 땅을 샀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대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호인 스타일이었다. 술을 즐겨 마셨고, 노는 것을 좋아하셨다. 이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했다. 어머니는 헌신적으로 농사일을 해서 자식들을 키우고 뒷바라지를 하셨다. 그러면서도 자식한테 신세 한탄을 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셨다. 지금 연세가 89세인데, 여전히 자식들을 챙기신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어머니다.

어린 시절 김재련과 어머니
어린 시절 김재련과 어머니

[본인 제공]

--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줬나.

▲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밥하는 법을 배웠다. 논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위해 카스테라 빵을 만들어 가져다드리기도 했다. 태풍에 벼들이 쓰러지면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와 같이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아직은 어린 나이였지만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뿌듯했다.

-- 언니들과 나이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 바로 위의 언니와 8년 차이가 난다. 큰언니는 나보다 16년 위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한 것은 큰언니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큰 언니는 어머니의 임신이 창피하다면서 내가 태어날 때까지 어머니와 말을 안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형부가 생겼고, 5학년 때 조카가 태어났다. 그 조카들이 결혼해서 애를 낳았으니 나는 벌써 할머니다.

중학교시절 김재련과 담임선생님
중학교시절 김재련과 담임선생님

[본인 제공]

-- 초중고 시절은 어떠했나.

▲ 고향에서 사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강릉시에 있는 강릉여고로 진학했다. 시골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아주 잘해서 선생님들로부터 인정받았으나 강릉여고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 강릉여고는 비평준화 고교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적은 중간보다 약간 잘하는 정도였다. 국어와 영어를 잘했는데, 수학은 못 했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지수나 로그처럼 써먹을 데 없어 보이는 수학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시절에 수학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나를 닮아서 수학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었나.

▲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갈매기의 꿈' 같은 소설책도 읽었다. 논둑길을 걸으며 책을 읽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책은 주로 학교 도서관과 학급문고에서 빌려 읽었다. 초등학교 시절 언니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강릉에 있는 서점에 데려가서 책을 사주곤 했다. 서점에 가면 특유의 책 냄새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책이 많은 도서관에 가면 가슴이 설렌다. 변호사가 돼서는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헌법재판소 결정문, 외국의 의미 있는 논문, 대법원판결 등을 읽는다. 판결을 보면 다수의견, 소수의견 등 많은 의견에 대해 고민을 하고 결론을 도출하는데, 그 내용이 책처럼 감동적인 경우가 있다.

-- 고교 시절에 관현악부 활동도 했다고 하던데.

▲ 나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강릉여고 시절에 밴드부에 들어가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88올림픽 성화 봉송 때는 고적대 퍼레이드를 했고, 도민체전 때도 춘천에 가서 퍼레이드를 했다. 어릴 때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았다. 학원에서 치는 것만으로 아쉬워서 피아노를 갖고 싶었는데, 우리 집 형편상 엄두를 못 냈다. 어린 마음에 피아노를 사주는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혼할 때 남편은 돈을 탈탈 털어서 피아노를 사줬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김재련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김재련

[촬영 정한솔]

-- 취미는 무엇인가.

▲ 노래 듣는 것도 즐기고,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고스톱 치는 것도 재미있다. 고스톱은 언니, 오빠 등 가족들과 하고, 우리 아들들의 학부모들과 치기도 한다. 고스톱을 치면서 웃고 떠들고 농담하는 것이 즐겁다. 고스톱은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아버지 친구들과 같이 쳐도 어린 내가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 사법연수원 시절 오락부장을 했다고 하던데.

▲ 사법연수원에서는 20명 정도가 한 조가 돼서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함께 하고, 여행도 같이 가곤 했다. 나는 맛집도 많이 알고, 숙소 예약도 쉽게 한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도 신나게 부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조원들이 나를 오락부장으로 불렀다.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 2017년에 암 수술을 했다. 5년간 암 재발 방지를 위한 약을 먹었고. 지난해 상반기에 완치판정을 받았다. 암의 주범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직업이 변호사여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기에 그 해소를 위해 좋은 사람들 만나서 여행도 다니고, 함께 놀기도 한다. 나한테 좋은 사람이란 눈치 안 보고,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이, 성별은 상관없다.

-- 장단점은 무엇인가.

▲ 긍정적인 성격이다. 공감 능력도 좋은 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상황이 어떨지, 이를 토대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편이다. 단점은 우유부단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고, 저 말 들으면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옥탑방에서 고시 공부하는 김재련
옥탑방에서 고시 공부하는 김재련

[본인 제공]

--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나.

▲ 학과 대표를 맡은 적이 있지만,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법대 선배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부해보자고 해서 몇 달 공부해본 적은 있다. 나한테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나는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어서 이념을 배우는 게 맞지 않았다.

-- 이념적 지향점은 무엇인가.

▲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다. 특정 정당을 지향하지 않는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악마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좀 더 평화롭고, 세련되게 정책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비판하면 좋겠다. 상대 진영이 의미 있는 주장을 했을 때는 흔쾌하게 "한번 해보자. 다만,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 부문만 보완하자"고 말하면서 소통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

지금 정치인들은 그냥 싸운다. 진영논리에 매몰돼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한다. 국민들로서는 피곤하다. 자기들 돈으로 싸운다면 상관없는데,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정치놀음을 하고 있다. 공무원 생활(여성가족부 국장)을 하면서 2년간 경험한 것도 정치인이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폭력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내가 경험한 국회의원들은 전문지식이 부족해 보였다.

--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 아닌가.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국민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들만 있으면 대한민국이 현재의 수준으로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책임감을 가진 행정부처 공무원들의 기여도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합창 연습중인 결혼이주민 자녀들
합창 연습중인 결혼이주민 자녀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사법시험에는 금방 합격했나.

▲ 기자가 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자가 취재원으로부터 푸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법조인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이화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다닐 때는 놀러 다니고, 연애하느라 제대로 사법시험 준비를 못 했다. 1996년 2월에 졸업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1998년 1차에 붙었으나 집중하지 못해 실패했다. 2000년에 1차, 2차, 3차에 동시 합격했는데, 독하게 공부했기에 가능했다.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기 위해 두 다리를 등산용 수건으로 묶어놓고 공부했다. 하루 24시간 중 21시간을 공부한 적도 있다.

-- 변호사 업무 중에서 여성 피해, 가정폭력, 이주민 고통 등 사회적 약자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 사법연수원 2년 차에 대학 선배인 이명숙 변호사 사무실에서 2개월간 시보 생활을 했다. 그 사무실에서는 이혼, 성소수자, 결혼이주자, 가정폭력 문제를 다뤘다. 그런 문제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사법연수원을 마칠 때 그 선배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해서 그곳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들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 가정법률상담소, 성매매피해자지원센터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게 됐다.

1960년대 파독 간호사
1960년대 파독 간호사

[파독근로자기념관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 결혼 여성 이주민들의 고통은 어느 정도인가.

▲ 내가 의뢰받은 사건 중에는 남편이 자신의 애인을 집에 들여놓고 살면서도 부인의 여권 등을 모두 빼앗아 집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한 사례가 있다. 여자 두 명과 사는 그는 아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맨발 상태로 집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남편이 부인인 이주민 여성에게 마을 사람들과 성관계를 하도록 하고 5만 원씩 받은 사건도 있었다.

시아버지가 이주민 며느리를 학대한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지적으로 장애가 있었는데, 시아버지는 이주민 며느리가 임신하도록 하기 위해 병원에 끌고 다녔다. 생리대를 사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하면 생리 여부를 확인한다며 화장실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

1960년대, 1970년대 우리 누이들도 미국이나 독일에 가서 힘들게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한국에 있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동남아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결혼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어 본국에 있는 부모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여가부의 지속적인 정책 추진으로 그런 편견이 많이 해소됐다고 본다.

영화 '69세'(3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성폭행한 실화를 담았다)
영화 '69세'(3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성폭행한 실화를 담았다)

[엣나인필름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고려대 의대생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을 의료계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피해자를 지원했던 사건 중 하나다. 동료 여자 의대생에게 성폭력을 했던 고려대 남자 의대생 3명은 그 학교에서 출교 처분된 뒤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다시 의대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의사로서 세상에 도움 되는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그 당시 피해자에게 준 상처를 마음속에 새겨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료인으로 살았으면 한다. 성폭력 가해자들을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퇴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올바른 해법은 아니다. 그들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법절차에 따른 책임을 졌기 때문에 사회로 돌아오는 길을 차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 30대가 60대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도 담당했다는데.

▲ 슬픈 사건이었다. 30대의 남성 간호조무사가 60대 초반의 여성을 성폭행한 일이었다.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처치를 받던 중 피해를 입었다. 법원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자 이 여성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2차 가해가 심했던 것도 이 여성을 극한 상황으로 밀어 넣었다. "30대의 젊은 남자가 60대 할머니를 성폭력 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이 여성을 '꽃뱀'으로 몰았다. 남편은 장례를 치르고는 유골함을 묻으러 갔다가 그냥 되돌아왔다고 나에게 알렸다. 억울함이 풀리면 그때 묻겠다고 했다. 피의자는 결국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은 '69세'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2021년 1월 동료 공무원 성폭행 사건 판결 법정에서 나오는 김재련
2021년 1월 동료 공무원 성폭행 사건 판결 법정에서 나오는 김재련

[연합뉴스 자료사진]

--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처음에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인상은 어떠했나.

▲ 2020년 5월 12일 오후 5시에 피해자가 찾아왔다. 서울시 동료 공무원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본 사건으로 상담 예약이 돼 있었다. 흰색 정장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그는 상당히 긴장돼 있었는데, 마음을 녹여주기 위해 내가 농담을 건넸으나 웃지 않았다. 상담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녀가 다른 피해가 있다고 했다. 피해자는 박 시장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를 디지털포렌식 하기 위해 사설업체에 자신의 핸드폰을 맡겼다고 했다. 우리 사무실에 오기 전날에는 서울시 간부에게 박 시장이 보낸 음란 문자 내용이 무엇인지를 카톡으로 알려준 상태였다.

-- 피해자는 어떤 사람인가.

▲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아가는 멋진 청년이다. 업무능력, 친화력, 조직에 대한 헌신,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모두 갖춘 사람이다.

--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낸 음란 문자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 피해자는 고소 당시 갖고 있던 증거자료를 수사기관에 모두 제출했다. 피해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히 진술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대중을 상대로 그런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피해자는 박 시장의 핸드폰을 신속히 포렌식 해달라고 수사기관에 강력히 요청했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의 문자 내용을 복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사기관도 가해자의 핸드폰을 압수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는데 가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중지됐다. 그 후에도 유족 등의 반대로 가해자의 핸드폰은 포렌식 되지 않은 채 영구 봉인됐다.

2020년 7월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 성추행 혐의 직권조사 촉구 기자회견
2020년 7월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서울시장 성추행 혐의 직권조사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 피해자가 "사랑해요", "꿈에서는 돼요"라고 했는데, 이 멘트는 어떻게 봐야 하나.

▲ 행정법원 판결이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명쾌하게 하고 있다. 판결문은 피해자의 이 문자는 박 시장의 성적인 언동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대화를 종결하기 위한 수동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또 박 시장에게 밉보이지 않고 그를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말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박 시장 지지자들은 이마저 믿지 않는다. 그가 살아 돌아와서 '내가 그런 범행을 했다'고 밝혀도 '감수성이 예민한 박 시장이 피해자가 곤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기가 범행을 했다고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할 사람들이다. 성폭력은 사실의 영역에서 판단해야 한다. 지지자들은 믿음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어서 끊임없이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 박 전 시장은 피해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 부하들은 직장 상사를 최대한 상냥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박 시장과 피해자 관계의 본질은 기관장-비서실 부하직원이다. 부하직원이 상냥하게 대한다고 해서 성적인, 이성적인 호감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부하직원이 유력 대선주자인 시장한테 '밤에 전화하지 마세요. 불편합니다. 그리고 그런 변태 같은 말 하지 마세요'라고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다. 위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왜 거절하지 못 했냐고 피해자를 욕할 것이 아니라 왜 한밤중에 부하직원에게 그런 문자를 보내느냐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약 대리처방을 시키고, 명절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고, 혈압을 재도록 하고, 시장이 샤워할 때 속옷 정리토록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공무원이 할 일이 아니다. 시청 공무원이 사노비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 시장이 순수하고 고결하기 때문에 고소당한 것만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피해자를 살인녀, 나를 무고 교사범으로 몰아간다.

2020년 7월 국회앞에 걸린 고 박원순시장 추모 플래카드
2020년 7월 국회앞에 걸린 고 박원순시장 추모 플래카드

[연합뉴스 자료사진]

-- 박원순 성폭력 사건 당시에 2차 가해가 심한 수준이었나.

▲ 당시 민주당은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곳곳에 내걸었다. 박 시장이 모두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 상황에서 도대체 그 님의 뜻은 무엇이며,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것인가. 성폭력으로 피소된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음이 밝혀졌는데도 이 당 소속 의원 중 '그것은 잘못됐다'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플래카드만큼이나 엽기적이었던 것이 '피해 호소인' 사태였다. 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이 단톡방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아직 혐의가 확인된 것이 없다는 논리였다. 명백한 언어적 퇴행이자 사회적 퇴행이었다. 2018년 1월 현직 검사가 방송을 통해 검찰 고위 간부가 성추행했다고 밝힌 다음 날 그들은 흰 꽃을 들고 '미투 검사'를 지지했다. 그때는 그 누구도 '아직 확인된 것이 없으니 피해 호소인'이라고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진영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모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가해자가 내 편이어서 무엇이라 말하기 곤란하다고 하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지 않나.

민주당 사람들은 "박 시장은 나의 롤모델"(우상호), "박 시장은 가장 청렴한 공직자"(임종석)라고 했다. 표를 의식한 멘트인 것 같다. 표를 얻으려는 이유는 정치를 하기 위한 것인데,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공(功)이 있다고 해서 과(過)에 대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하직원을 성적으로 괴롭히고, 사적 노무를 시킨 사람을 롤모델로 생각하고 청렴하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지지자들만을 위한 정치다.

피해자의 저서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저서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MBC 신입 기자 시험에서 피해자 명칭 관련 문제가 나왔다고 하던데.

▲ 그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피해자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지를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피해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불러보라고 조롱하는 것과 같았다. 이를 알게 된 피해자는 "내가 방송국 앞에서 죽으면 (나의 피해 사실을) 믿어줄까요?"라고 했다. 당시 시험을 봤던 기자 지망생이 나한테 전자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메일에서 "내가 아는 지원자들은 모두 '피해자'로 불러야 한다고 썼다"고 했다. 피해자는 그런 메일 한 통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 피해자는 2차 가해 관련 사과를 받았나.

▲ 2차 가해를 한 사람 중에는 유명 정치인, 방송인, 현직 검사, 변호사, 가해자의 지지자 등이 있다. 그들 중 자발적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온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한다. 어떤 국회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만적이다. 피해를 본 사람이 있고, 그 피해자가 생존해 있으며.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할 수 있는 루트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SNS를 통해 사과하는 것은 대중을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를 위한 사과가 아니다.

인터뷰중인 김재련
인터뷰중인 김재련

[촬영 정한솔]

--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은.

▲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한다. 지나간 것은 오래 생각하지 말고, 앞서가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넘겨짚어 파악하려 하지 말고, 누가 이야기를 하면 그대로 믿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 솔직히 말해서 삶의 목표는 없다. 내가 원해서 세상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다 내가 꼭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다음 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에 충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해(害)보다는 도움이 되고. 내가 힘들 때 위로받고, 누가 힘들어할 때 도와주고 싶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살다가 어느 날 삶의 마지막 시점에 왔을 때 그동안 해보고 싶은 것 중에 못 한 것이 있어서 후회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윤석열 정부에 요구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이 세상이 아름답고, 멋지고, 평화롭기 위해서는 젠더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담당하는 여가부의 폐지는 다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그동안 여가부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고,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런 부분은 보완하고 개선함으로써 채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 내가 20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담당했던 성폭력 사건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을 정리한 책을 쓰고 있다. 거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으며 2월 말이나 3월 초에 책이 나온다. 피해자는 판사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위로 또는 상처를 받는지, 우리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졌는지, 어떻게 하면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지 등을 담을 예정이다. 내 경험을 토대로 독자들과 교감하기 위한 것이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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