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에게 용서 구하는 길"…법원이 무기수에 사형 선고한 이유
송고시간2023-01-30 17:51
"'법정 놀이' 식으로 재미 삼아 폭행"…공범들, 상고장 제출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법원이 교도소 안에서 동료 수용자를 때려 숨지게 한 20대 무기수에게 이례적으로 사형을 선고한 것은 무기수의 범행을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기수에게 또다시 무기징역을 내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재판부가 고심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낸 것으로 분석된다.
30일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A(28)씨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공주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A씨는 2021년 10월 같은 방을 쓰는 피해자(43)가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먹을 휘둘렀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같은 방에 있던 재소자 B(29), C(21)씨와 함께 별다른 이유도 없이 폭행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망을 보고 한 명은 유도의 목 조르기 기술을 보여주겠다며 꼼짝 못 하게 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기절하거나 대소변을 지리기까지 했지만, 이들은 가혹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의 특정 신체 부위를 빨래집게로 집어 비틀고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다른 재소자들이 볼 수 있도록 수용거실 창문 앞에서 방송에 나오는 개그맨을 흉내 내라고 시키고도,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동료 수용자에게 '병신이니까 괴롭혀도 된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괴롭힌 사실이 드러날까 우려해 피해자가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 가족이 면회를 오지도 못하게 했다.
결국 심장질환 이외에는 별다른 지병이 없었던 피해자는 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지 20여일 만에 복부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 전신 출혈과 염증, 갈비뼈 다발성 골절 등으로 숨졌다.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이들에게서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A씨는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무기수라 총대를 메겠다고는 했을 뿐, 살인은 공동 범행이었다"며 "폭행을 허락하는 '판사'와 직접 실행하는 '집행관'의 역할을 맡아 '법정 놀이' 식으로 재미 삼아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왜 피해자의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갖고 있느냐는 경찰의 추궁에 "출소 후 술이라도 한잔 하려고 했다"고 진술했으며, C씨는 '벌레 괴롭히기도 지겹다'는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무기수에게 범행을 몰아가자며 편지로 말을 맞추려 시도하기까지 했다.
대전고법 형사1-3부(이흥주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함께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B씨와 C씨에게는 1심 형의 배가 넘는 징역 12년과 1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돈을 위해서라거나 원한 관계에 의해서가 아닌,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피해자를 괴롭혔다"며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것을 보기 위해 지속적으로 학대한 행위는 흉기로 찔러 살해한 범행보다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에게 무기징역 이하의 형을 선고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사형 선고는) 이미 세상을 떠나 용서할 수도 없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길"이라고 사형 선고 이유를 판시했다.
공범 B씨와 C씨는 30일 변호인을 통해 대전고법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A씨는 아직 상고하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될 경우 A씨는 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6년 사형을 확정받은 임모(24) 병장 이후 62번째 사형수가 된다.
다만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실제 사형이 집행되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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