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세탁기가 없던 과거에는 날이 풀리면 집 앞 시냇물에서 겨우내 밀렸던 빨래를 하면서 봄맞이를 하곤 했습니다. 젖은 빨래는 넓은 마당 빨랫줄에 널어 햇볕에 말리는 게 일상이었지요. 빨래는 수해 현장에서는 일상의 복귀, 전쟁터에선 평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최근엔 거동이 힘든 노인들에게 이불 빨래해 주는 봉사활동도 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한강 빨래터, 동네마다 있던 우물이나 도랑 빨래터 등 세월과 함께 변해온 빨래터 풍경을 모아 봤습니다.
6.25 전쟁 중 전차가 전복된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1951년 [국가기록원 제공]
큰 냇물에서 많은 여인이 빨래하고 있다. 1953년 [국가기록원 제공]
수원화성 화홍문 앞 버드내(수원천)에서 여인들이 빨래하고 있다. 1960년 [김동휘 제공]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강가에서 아기부터 어머니까지 온 가족이 나와 빨래를 하고 있다. 1965년 [한치규 제공]
광주광역시 광주천에 주민들이 몰려나와 빨래하고 있다. 1965년 [한치규 제공]
한강 뚝섬 강 복판에 있던 빨래터. 1966년 [홍순태 제공]
흰 눈이 하얗게 깔린 강원도 철원 신수리 계곡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1976년 [한치규 제공]
강원도 춘천시의 한 빨래터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서 한겨울 주민들의 인기를 끌었다. 1984년 [연합뉴스 자료사진]
부산적십자사 회원들이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이불 빨래 봉사를 하고 있다. 2009년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