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가기간뉴스 통신사 연합뉴스
제보 검색어 입력 영역 열기
국가기간뉴스 통신사 연합뉴스
댓글

[팩트체크] 탄핵소추하려면 형사상 수사·기소가 먼저 있어야 한다?

송고시간2023-02-14 13:58

댓글

법조계 "탄핵, 권력 가져 일반 사법절차로 책임묻기 힘든 고위공직자 견제장치"

헌재, 과거 탄핵결정문서 "탄핵 사유, 형소법상 공소사실처럼 특정하지 않아도 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사결과 나오기 전 헌재가 독자적 탄핵 결정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대응 부실의 책임을 물어 공동 발의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정부·여당은 탄핵을 추진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이 드러난 게 없다며 반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 표결에 앞서 "경찰 수사 결과 (이 장관의) 직무상 위법이 확인되지 않았고 검찰 보완 수사도 계속 진행 중"이라며 "탄핵소추안은 법적 요건 미비에 따라 헌재(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이 자명하다"고 언급했다. 탄핵 요건으로 '형사상 기소 등 구체적인 법률 위반이 전제돼야 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는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지난달 74일간의 이태원 참사 수사를 종결하면서 이 장관에 대해 불송치(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수사를 통해 구체적인 혐의(재난안전법 위반 등)가 확인되지 않아 탄핵 사유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무위원(장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국내에서 처음인 데다 첨예한 정치적 사건인 만큼 찬반이 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수개월이 걸쳐 사실관계와 법 위반 여부를 따지고 숙고한 뒤에야 결론 내릴 탄핵심판의 결과를 사전에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탄핵심판이 일반적인 형사재판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기본 절차와 취지를 살펴보는 건 이번 탄핵심판을 이해하고 전개 방향을 점치는 데 안목을 갖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연합뉴스 사진자료]

헌재는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보장하는 헌법 수호기관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막고 관련 법 제도를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탄핵제도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 남용을 입법부(국회)를 통해서 견제할 수 있게 한 헌법적 장치인데, 우리나라는 국회에 탄핵소추권만 있고 탄핵심판권은 헌재에 있다. 미국과 영국은 의회가 탄핵의 두 절차인 소추(하원)와 심판(상원)을 모두 담당하고, 탄핵 사유의 범위도 넓다.

우리나라의 탄핵제도는 1948년 공포된 제헌 헌법부터 도입됐지만 군부독재 기간 유명무실화됐다가 민주화 운동의 결실인 1987년 개헌으로 이듬해 헌재가 출범하면서 자리를 찾게 됐다. 하지만 실제로 가동된 것은 훨씬 뒤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심판(2004년 노무현·2017년 박근혜)을 통해서였다. 학계에선 우리나라의 탄핵심판을 '제왕적'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법제처 홈페이지에 게재된 논문 '탄핵제도에 관한 쟁점'을 보면 문두에 탄핵제도를 일반 사법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절차에 따라 징계하기 곤란한 고위공직자나 법관이 비위를 범한 경우에 이를 소추하여 파면하는 제도로 정의해 놨다.

또 2021년 선고된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문(2021헌나1)을 비롯해 학계 논문(표명환 제주대 교수 '현행법상 탄핵 관련 규정의 몇 가지 문제점과 개선 입법방향', 2018년)과 온라인 사전(법률용어사전·시사상식사전)에서도 탄핵심판에 대해 대동소이한 정의를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탄핵제도가 없다면 권력의 비호나 법적인 신분 보장 때문에 죄책을 묻기 어려운 고위공직자나 법관에 대해 국회가 소추권을 행사해 헌재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주요 국가의 탄핵제도
주요 국가의 탄핵제도

[법제처 법제논문 '탄핵제도에 관한 쟁점' 발췌]

비슷한 맥락에서 재판에 회부하기 어려운 고위공직자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데 탄핵제도의 취지가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1948년 제헌 국회의 속기록을 보면 "탄핵은 대체로 고귀한 관리들에 대해 하는 것인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령 대통령이나 부통령이나 혹 사법관(판사)이 그대로 형사재판소에 불려가기는 어려운 것입니다.…법을 적용하기 전에 고귀한 이는 탄핵재판소에서 파면시켜서 평민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임성근 판사 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문에 탄핵제도의 도입 취지를 시사하는 근거로 인용돼 있기도 하다.

탄핵 결정의 효력이 고위공직자가 단지 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그치는 점도 이런 취지에 부합한다. 이는 남용된 권력을 통제하는 차원에서 해당 권한을 박탈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탄핵심판은 당사자 개인의 죄책을 물어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형사재판이나 징계와는 법적인 성격과 절차가 다르다.

헌법 65조는 1항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4항에는 '탄핵 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치고 민·형사 책임을 면제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헌재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작성한 결정문(2016헌나1)에서 "탄핵심판 절차는 형사 절차나 일반 징계 절차와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밝혀놨다.

그러면서 "헌법이 정하고 있는 탄핵소추 사유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인데 여기에서 법률은 형사법에 한정되지 않는다"며 "헌법은 물론 형사법이 아닌 법률의 규정이 형사법과 같은 구체성과 명확성을 가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탄핵소추 사유를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과 같이 특정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고, 소추의결서에는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심판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면 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표] 탄핵심판 관련 법 조문





헌법 제65조
①대통령ㆍ국무총리ㆍ국무위원ㆍ행정 각부의 장ㆍ헌법재판소 재판관ㆍ법관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ㆍ감사원장ㆍ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②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③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④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
①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
② 피청구인이 결정 선고 전에 해당 공직에서 파면되었을 때에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와 거의 동시에 이뤄진 탓에 논란이 더 컸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에선 위법 혐의가 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탄핵소추는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탄핵 재판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탄핵심판의 주심을 맡은 강일원 재판관은 재판 도중 "이 재판은 탄핵심판이지 형사소송이 아니다. 형사재판과 혼동해 쟁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수사의 결론이 나기 전 헌재의 독자적인 사실인정과 판단에 따라 파면 결정이 내려졌고 그 뒤 구속기소됐다.

헌법재판소법(40조)은 탄핵심판 절차에 관해 기본적으로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도록 규정하지만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라는 단서가 있다.

법무법인 지평은 2017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 직후 낸 평석(결정에 대한 해석) '탄핵심판을 통해 살펴본 헌법재판의 특수성'에서 "헌재는 독립적인 재판기관으로 다른 사법기관의 판단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탄핵심판은 검사나 피고인 측이 제출한 증거가 우선시되는 형사재판과 달리, 재판부 직권에 의한 증거조사가 검사나 피고인 측 신청에 의한 증거조사와 대등한 지위를 갖고, 재판부 직권으로 사실조회나 기록 송부, 자료 제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 헌재는 수사기관은 물론 법원에서 확정되지 않은 사실관계에 대해 독자적으로 사실인정을 할 수 있고, 심지어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법리와 다른 법리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앞서 탄핵 심판대에 올랐던 두 전직 대통령의 명운을 가른 잣대이자 이번 이상민 장관의 탄핵심판에서도 최대 쟁점으로 거론되는 '법 위반의 중대성'도 헌재가 탄핵심판을 통해 독자적으로 창설한 법리다.

헌법(65조)에선 탄핵소추의 요건을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규정하고, 헌법재판소법(53조)은 탄핵 결정의 요건을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가 있는 경우'로 모호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문언상으로는 직무집행과 관련한 위헌, 위법이 인정되기만 하면 파면이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탄핵 위기에 놓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날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의결서를 접수하고 심리에 착수했다. 2023.2.9 hama@yna.co.kr

그러나 헌재는 우리 헌정사상 첫 탄핵 재판인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에만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시하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법리는 탄핵심판의 핵심 준거가 돼 2017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도 유지됐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헌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결정문(2004헌나1)에서 법 위반의 중대성에 대한 판단이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갖는 막중한 지위와, 파면이 가져올 효과를 고려한 결과임을 자세히 논하면서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공직자의 경우에는 파면 결정으로 인한 효과가 일반적으로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미한 법 위반 행위에 의해서도 파면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대성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정리해 보면 탄핵제도는 그 절차와 취지로 볼 때 권력이나 법적 지위 때문에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나 소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 국회 소추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 권력 견제장치라는 점에서, 검찰·경찰의 수사나 그 결과를 탄핵소추가 타당한지를 가르는 잣대로 삼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탄핵심판은 헌재가 직권조사를 통해 내린 독자적인 사실인정과 판단을 따른다는 점에서 수사를 통한 혐의 확인이 전제가 된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경찰이 이상민 장관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탄핵소추가 요건 미비라고 단정하거나 헌재에서 기각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탄핵제도의 변천
우리나라 탄핵제도의 변천

[법제처 논문 '탄핵제도에 관한 쟁점' 발췌]

abullapia@yna.co.kr

<<연합뉴스 팩트체크팀은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abullapia@yna.co.kr)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핫뉴스

더보기
    /

    댓글 많은 뉴스

    이 시각 주요뉴스

    더보기

    리빙톡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