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아끼려다…' 시골 냉골방서 숨진 불법체류 태국인 부부
송고시간2023-02-24 11:46
방 안에서 장작불 태우다 질식 한듯 …10년간 돈 벌어 본국에 송금
(고창=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기름값을 아끼려고 이 작은 냉골 방에서 장작불을 태웠나 봐요. 금슬도 좋고 무슨 일이든 만능이었던 부부였는데…."
24일 오전 전북 고창군 흥덕면 한 마을의 허름한 단독주택.
이곳은 전날 오후 불법체류자 신분인 태국인 A(55)씨와 부인(57)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된 곳이다.
마을주민들과 경찰에 따르면 A씨 부부는 10여 년 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들어와 고창군에 정착했다. 관광비자로 입국했다고 한다.
마을 이곳저곳에서 돈벌이에 나섰지만, 한국 생활은 생각했던 것만큼 녹록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은 없었지만, 부부는 조금씩 한국말을 배워가면서 논밭일, 이앙기 작업, 포클레인 작업 등 안 해본 일없이 생활했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일당은 1인당 12만∼13만원.
부부에게는 돈을 모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자녀들이었다.
부부는 어렵게 모은 돈을 태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송금했다고 한다.
바로 윗집에 사는 주민 백신기(68)씨는 "부부가 농사일이 끝나면 꼭 손을 잡고 마을을 산책하곤 했고 모은 돈은 태국에 사는 아이들에게 보낸다고 들었다"며 "외국인 부부가 열심히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A씨 부인과의 추억도 회상했다.
작년 여름 폭우 탓에 논일이 예정 작업시간보다 2시간 일찍 끝나자 A씨 부인이 먼저 "10만원만 주세요"라며 배려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일당은 12만원이었다.
주민 김용국(75)씨는 "부부가 방 안이 추워서인지 집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서 자고 씻을 때만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논밭 일은 물론 이앙기와 경운기도 능숙하게 다뤘고 주민들을 보면 꼭 '사장님'이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부부가 연 30만원에 세를 주고 산 것으로 파악됐다"며 "기름보일러에 남은 기름이 없고 가스를 쓴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난방을 아예 안 했고 추위를 피하려고 방안에 장작불을 피웠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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