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캔들' 정경호 "최치열에 인간미 넣으려 '하찮음' 연기"
송고시간2023-03-06 09:00
일타강사 최치열 역…"집에 칠판 사두고 판서 따라 쓰며 연습"
"까칠한 캐릭터 반복에 고민도…전도연 보며 '변하지 않는 가치' 느껴"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까칠하지만, 알고 보면 속정 깊은 남자. 로맨스 드라마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에 가끔은 허둥대고 어떨 때는 허술한 듯한 인간미를 한스푼 넣으니 조금은 색다른 캐릭터가 완성됐다.
배우 정경호가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연기한 최치열의 모습이다. '1조원의 남자'로 불리는 최치열은 학원가에서 손꼽히는 일타강사(최고 인기강사)지만, 비실비실한 체력으로 휘청이거나 다리가 풀려 넘어지는 '몸개그'를 선사하는 인물이다.
드라마 종영을 앞두고 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경호는 "잠도 못 자고 섭식장애도 있는 예민한 캐릭터에 인간적인 모습을 넣고 싶었다"며 "제가 잘 (연기)하는 '하찮음'을 보여주면 좀 더 사람답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마른 체형인 정경호는 그동안 까칠한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1·2'에서는 예민한 흉부외과 의사,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개인주의가 강한 교도관, '미씽나인'에서는 한때 잘나갔던 밴드의 리더를 맡았다.
정경호는 "수년간 예민하고, 날카롭고, 까칠하고, 샤프한 비슷비슷한 역할을 해오다 보니 고민도 있었다"며 "하지만 최치열을 하면서 과거에 표현했던 (캐릭터의) 아픔들과 제 나이가 마흔하나가 돼서 표현하는 게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실제 그가 맡은 캐릭터는 비슷한 면도 있었지만, 작품마다 다르게 표현됐다. 정경호는 캐릭터의 직업에 초점을 맞춘 연기가 '영업비밀'이라며 웃었다.
"제 개인적인 영업 방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직업의 전문성이에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준환이는 흉부외과 의사답게, 치열이는 일타강사답게 직업군에 충실하게 캐릭터를 만들면 인물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최치열은 그간 드라마에서 주인공 직업으로는 보기 드물었던 일타강사. 정경호는 집에 칠판까지 사두고 판서 연습을 하고, 실제 일타강사에게 조언을 받으며 수업을 할 때 말투 등을 배웠다고 했다.
정경호는 "의사, 학교 선생님 등은 주변에 있지만 일타강사는 입시를 치르는 사람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며 "나 역시 '일타'가 무슨 뜻인지도 몰라 0(영)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학 공식을 외워야 하는데, 이해는 안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외웠다"며 "애들 앞에서 칠판에 글씨를 쓰는 장면이 10번 정도 나오는데 집으로 일타강사를 불러 칠판에 판서를 써달라고 하고, 그걸 따라서 쓰는 연습을 두 달간 했다"고 덧붙였다.
극 중 최치열은 강의가 인생의 전부인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최치열에게 그간 잊고 살았던 일상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준 이는 수험생 해이의 이모이자 반찬가게 사장인 남행선(전도연 분)이다.
정경호는 "최치열은 외로움에 바짝 메마른 인물"이라며 "그런 최치열이 행선의 가족을 보면서 '온기'를 느낀다"고 말했다.
"엄청난 서사가 아니더라도 우연히 툭 건들면 나오는 감정들이 있잖아요. 행선이 지어준 밥이 치열에게 그런 매개체가 된 거죠. 밥을 한입 먹었을 때 '왜 좋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과거 힘들었을 때 행선의 어머님이 베풀어주셨던 따뜻한 기억이 떠오른 거예요. 우연히 찾아온 운명적인 인연인 거죠."
사실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에는 정경호와 10살 연상인 전도연과의 로맨스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정경호는 "전도연과 연기를 하는데 어떻게 케미(케미스트리)가 안 나겠느냐"며 "그런 걱정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동안 빠르게 바뀌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내가 어떻게든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변화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전도연 선배님과 연기하면 늘 같은 것 같지만 똑같지 않은 웃음소리나 말투, 호흡 등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자체로서 단단함을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계속 연기를 하다 보니 나를 보여주는 표현하는 법에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꽉 채워나가는데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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