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 ④ "대도시 성냥개비처럼 살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꿈"
송고시간2023-04-01 08:00
전남 장성서 세 아이 기르며 귀농 성공담 일군 문인석·홍서연 부부
"후배 귀농인은 시행착오 겪지 않도록 실패 경험도 공유하고 싶어"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장성=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세 아이를 낳았어요. 치열한 일상을 벗어난 여유도 갖게 됐고요. 성냥갑 속의 성냥개비처럼 살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꿈들입니다."
문인석(45), 홍서연(40) 씨 부부는 14년 차에 접어든 귀농과 대도시 생활을 맞바꾼 결실이 일상의 기쁨이라고 1일 말했다.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가공하는 농업법인을 일구고, '핫플'로 이름난 카페까지 운영하는 부부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가족을 일구며 만든 소소한 행복을 귀농 성공담보다 먼저 꼽았다.
김포공항 근처에 신혼집을 마련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 부부는 2010년 3월 10일 전남 장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장성은 남편 문씨의 고향이지만, 준비했던 귀농이 아니었다.
당장 이사할 집이나 새로 구할 직장도 없었다. 통장 속 여윳돈은 1천만원도 되지 않았다.
부부는 갓 돌을 넘긴 첫째 아이를 안고 고향 집이자 시댁인 장성을 방문했다가 그대로 눌러앉게 됐다.
남편 문씨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면서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자 부부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귀농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후 여가쯤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부부는 1년만 버티자, 3년은 더 견뎌내자, 기왕이면 5년을 채워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사이 남편 문씨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작은 방앗간은 TV 홈쇼핑에서 완판을 이어가며 전국의 백화점에 참기름과 들기름을 납품하는 농업법인 다다채로 성장했다.
아직은 번 돈 보다 갚아야 할 빚이 많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은 귀농 생활 덕분에 부부는 서울에서 살 땐 엄두조차 못 냈던 둘째와 셋째 아이까지 얻게 됐다.
어느새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자란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사촌과 함께 온마을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닌다.
서울을 떠나와 겪은 다사다난한 귀농 생활의 터전이자 다둥이를 얻은 부부의 따뜻한 공간.
다다채의 이름에는 이러한 뜻이 담겼다.
부부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문을 연 떡카페 미르당이 주말이면 나들이객이 몰려오는 광주 근교의 여행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귀농 초기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부부는 실패의 경험 또한 성공기만큼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성공 사례만 보고 귀농에 뛰어들었다가 도시로 돌아간 또래 청년들을 숱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서울 신혼집을 1년 가까이 비워둔 채 빚까지 얻어 임대아파트에 들어간 부부는 그야말로 맨손으로 출발했다.
미숫가루를 주력 상품으로 삼았던 귀농 초창기, 남편 문씨는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봤고 아내 홍씨가 혼자 차를 몰아 전국에 있는 판매처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건강식의 '살 빼기' 효과를 강조한 문구 하나가 과대광고 단속에 걸려 경찰 조사를 받고 영업정지 처분까지 내려진 일도 있었다.
제품 포장재 글꼴이 저작권 침해 시비에 휘말리는 등 애간장을 태우며 지새웠던 밤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지금은 웃고 넘기는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높고도 험한 언덕길이었다.
부부는 후배 귀농인이 자신들처럼 몰랐거나 서툴렀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실패를 겪지 않도록 그간의 경험을 웹툰으로 만들고 있다.
연인에서 부부로, 세 아이의 부모로, 도시민에서 귀농인으로, 굽잇길마다 성장기를 담아낼 웹툰은 미르당의 SNS 계정에 7회까지 올라와 있다.
나중에는 책으로도 엮어낼 계획이다.
남편 문씨는 "우리의 실패담이 10년 귀농 생활 중 3년은 될 것"이라며 "진심을 다해 귀농하는 후배들이라면 삶에서 그 3년을 줄이는 경험과 정보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의 최종 목표는 자신들이 선택한 장성, 손수 일군 터에서 세 아이도 대대손손 살아가도록 굵고 깊은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아내 홍씨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은 공부도 하도록 언젠가는 도시에 내보내겠지만, 우리 아이들도 가족을 꾸리고 생계를 이을 때는 이곳으로 돌아오도록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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