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왜곡 현행법 위반, 처벌 근거 마련되나
송고시간2023-03-27 11:34
4·3특별법에 '허위사실 유포 안 돼'…처벌규정 신설 추진
정부 보고서 "남로당 중앙당 직접 개입 없었다"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다가오면서 4·3 왜곡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23일 제주시 이도이동에 있는 한 거리에 '제주4·3 영령이여, 저들을 용서치 마소서 진실을 왜곡하는 낡은 색깔론, 그 입 다물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사진 위쪽)이 게시돼 있다. 김한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을)은 제주4·3을 공산폭동이라고 왜곡 주장하는 현수막(사진 아래)이 최근 설치돼 유족 등 도민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현수막을 이날 걸었다고 밝혔다. 2023.3.23 [김한규 국회의원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koss@yna.co.kr
27일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국회의원(제주시갑)에 따르면 송 의원은 지난 9일 4·3희생자 및 유족을 모욕하는 비방이나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개정안은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법개정이 이뤄지면 태영호 국회의원(국민의힘)의 '4·3 김일성 사주설' 발언과 최근 소수 정당·단체의 4·3 왜곡 현수막 게시와 같은 행위도 수사 대상이 된다.
현행 4·3특별법에서도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4·3 왜곡 현수막 등도 현행법상 위반에 해당하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위법행위가 반복돼왔다.
제주4·3유족회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보수정당과 단체에서 하는 왜곡 행위 때문에라도 속히 처벌 조항이 들어간 4·3특별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며 "4·3유족회와 관련 기관·단체는 향후 4·3특별법 개정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허위로 5·18을 왜곡·폄훼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2020년 12월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됐다.
이 법안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지역 5년 이하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5·18을 부정·왜곡·폄훼하는 주장의 근거가 허위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져보고 만약 허위 사실일 경우 왜곡을 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둔 셈이다.
소수 극우단체들은 '4·3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면서 정부가 공식 채택한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전면 부인한다.
2003년 발간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는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최고 의결기구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정식으로 채택한 보고서다.
당시 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법무부장관·국방부장관·행정자치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기획예산처장관·법체처장과 제주도, 국무총리 위촉 유족대표, 관련 전문가 등 20여명으로 구성됐다.
일부 극우단체들이 이 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며 여러 차례 행정소송과 헌법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4·3사건은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 및 서청과 제주도민과의 갈등, 그로 인해 빚어진 긴장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과 접목시켜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보고서는 남로당 중앙당이 제주도 무장투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단서로 경비대의 동원계획이 무산된 과정을 다룬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를 들고 있다.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에는 '4·3 투쟁 직전에 고승옥 하사관이 문상길 소위에게 무장투쟁이 앞으로 있을 것이니 경비대도 호응 궐기해야 한다고 투쟁 참가를 권유했는데, 이에 문 소위는 중앙 지시가 없으니 할 수 없다고 거절한 바 있다'고 기록돼 있다.
1948년 지리산 진압군 사령관을 지낸 백선엽(대장 예편)은 그의 저서 '실록 지리산'에서 '여순반란사건은 결코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다. '4·3과 마찬가지로 당 말단에서 빚어진 자의적인 행동이었다'고 적었다.
김정곤(소장 예편)도 그의 저서 '한국전쟁과 노동당전략'에서 "5·10선거 반대투쟁에서 제주도만이 특이하게 이질적인 투쟁형태를 보였고, 이는 당노선에 대하여 일종의 돌기물적(돌출적)인 성격임이 틀림없었다"고 기술했다.
이 외에도 한국사 관련 연구자인 이삼룡, 존 메릴 등 여러 연구자도 중앙당 지령 없이 제주도 자체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특히 극우단체들은 4·3의 김일성 사주설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근거로 4·3 무장봉기를 주도한 김달삼의 해주대회 참석을 들고 있다.
하지만 김달삼은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해 한 연설에서 김일성의 경쟁자였던 박헌영을 지지했고 김일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박헌영은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미국 첩자 및 정부 전복 음모의 죄목으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북한에서 제주4·3과 김달삼을 주로 다루는 드라마 등이 나오는 시기도 김일성 정권 초기보다 80~90년대 들어선 다음이며 이 또한 '4·3김일성 사주설'에 대한 직접 증거는 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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