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 조각 퍼즐 맞추는 '드림팀'…"그만하라 할 때까지 해야죠"
송고시간2023-05-25 17:17
20년 넘게 국립중앙박물관서 자원봉사한 나여생·송선영·김원자 씨
"맞는 조각 찾을 때는 손끝서 전율…뻥튀기 먹다가도 조각 맞추기도"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5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특별전을 찾은 토우 복원에 힘쓴 자원봉사자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나여생ㆍ송선영ㆍ김원자 선생님. 2023.5.25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토우는 크기가 작은 데다 출토될 때부터 바스러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1999년부터 묵묵하게 조각을 맞추고 복원해온 분들이 여기 계십니다."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앞.
신라와 가야 무덤에서 출토된 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를 조명한 특별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언론 공개 행사에서 전시를 설명하던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누군가를 소개했다.
힘찬 박수가 나왔으나,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인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윤 관장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지긋한 나이의 여성 3명이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띠던 이들은 박물관 자원봉사로 각종 토기와 토우 조각을 맞추고 복원해 온 나여생·송선영·김원자 씨다.
송선영 씨는 연합뉴스와 만나 "늘 하던 일인데 사방에서 칭찬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며 웃었다.
세 사람 모두 우연한 기회로 유물 접합·복원에 참여하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5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특별전시 언론 공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 고대의 장송 의례를 다루는 전시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될 삶을 위해 무덤 속에 넣은 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를 조명한다. 2023.5.25 mjkang@yna.co.kr
송선영 씨와 나여생 씨는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운영하는 강좌를 들은 뒤,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토기 유물과 만났다. 1999년 7월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25년 차 베테랑이다.
김원자 씨는 2000년부터 전시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 2018년부터 '이직'했다고 한다.
나여생 씨는 "처음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서 출토된 토기부터 시작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조각을 하나씩 씻고 흙을 털어내 말리고, 번호를 매기고, 문양을 서로 맞추는 데 희열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토기 조각의 퍼즐을 맞추는 일은 사실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일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박물관 사무동 4층으로 출근하는 이들은 조각난 토기 조각을 들여다보며 서로 맞추고 붙이기를 반복한다. 같은 곳에 보관된 조각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원자 씨는 "사실 토기 조각을 접합하고 복원하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오랜 기간 수천 점의 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붙였다 떼기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송선영 씨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5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특별전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 고대의 장송 의례를 다루는 전시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될 삶을 위해 무덤 속에 넣은 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를 조명한다. 2023.5.25 mjkang@yna.co.kr
오랜 시간 작업하다 보니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도 적잖다.
토기 조각을 맞추느라 집중하면서 몇 시간씩 앉아 있다 보니 허리는 물론 어깨, 팔, 손가락 등 성한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토기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신난 모습이었다.
송선영 씨는 "목이 긴 항아리를 작업할 때 아무리 찾아도 없던 조각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정확하게 붙었다"며 "손가락 끝에서부터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했던 경험"이라고 회상했다.
나여생 씨는 "서울대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토기 관련 유물도 우리가 다 작업했다"고 귀띔했다.
매일 머릿속으로 조각 퍼즐을 하고 있을 이들에게 '직업병'은 없을까.
송선영 씨가 "집에서 뻥튀기를 먹다가 어느새 조각된 뻥튀기 과자를 하나씩 맞추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하자 나머지 두 사람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인터뷰 내내 '재밌다', '잘 맞다', '즐겁다'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25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개된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특별전 전시장에서 나여생 씨가 토우 장식 토기를 보고 있다. 나씨는 1999년부터 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토기 유물의 접합, 복원에 힘을 보탰다. 2023.5.25
나여생 씨는 "있는 그대로 토기 유물을 보면서 두께, 모양, 문양, 질감을 살펴보고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이 좋다"며 "내 생활의 활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원자 씨는 "전시실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는 유리 진열장 안에 있는 토기를 만져보지 못한 채 해설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내가 직접 만지고 다루니 감명 깊다"고 했다.
김 씨가 두 사람에게 일을 배웠다며 "사제 간"이라 하자, 송씨는 "청출어람"이라고 화답했다.
어느덧 토기 조각 맞추기의 '달인'이 된 이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어느 날 박물관에서 '이제 나오지 마세요', '그만하세요'라고 말할 때까지 건강하게 계속 일하고 싶어요. 그때까지 우리가 잘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게 목표입니다." (송선영 씨)
ye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3/05/25 17:1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