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추모하며 경례′…제6회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식
송고시간2021-11-26 21:26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11/26 21:2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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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주한 미 해병대원들과 무공수훈자회 회원들이 영웅들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주한 미 해병대원들과 무공수훈자회 회원들이 영웅들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당시 전투에 참가한 용사들과 내빈들이 경례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당시 전투에 참가한 용사들과 내빈들이 묵념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식에서 당시 전투에 참여한 용사들과 내빈들이 묵념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 대리(오른쪽)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미 7사단 32연대에서 카투사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다 희생된 고 정환조 일병의 가족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오른쪽)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미 7사단 32연대에서 카투사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다 희생된 고 김석주 일병의 가족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사를 대독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사를 대독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영웅들을 기리고 양국의 동맹을 강조하는 추모사를 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가운데)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 대리(뒤), 김정규 무공수훈자회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 앞서 당시 전투에 참가한 용사들 헌화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가운데)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 대리(오른쪽), 김정규 무공수훈자회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 앞서 당시 전투에 참가한 용사들에게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오른쪽부터)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 대리, 김정규 무공수훈자회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열린 제6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 앞서 당시 전투에 참가한 용사들 헌화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혹한 속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이 국군과 함께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전투 기간 미군 4천500여 명이 전사하고 7천500여 명이 다쳤다. 미군 전사(戰史)상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2021.11.26 hkmpooh@yna.co.kr (끝)